송미경·동화작가

사람들이 내게 가장 영향을 끼친 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황소 아저씨'라고 대답한다. 어린 시절 나는 엄마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동생에게 그 동화책을 읽어줬다. 표지가 떨어져 나갈 때까지 반복해서 읽었다. 내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에도 새로 산 '황소 아저씨'를 읽어줬다.

추운 겨울 밤, 생쥐는 보릿집에 주둥이를 묻고 잠든 황소 아저씨의 등을 타고 구유 속으로 달려간다. 등이 가려워 잠에서 깬 소는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동생들 먹을 것을 찾아나선 생쥐의 사연을 듣게 되고, 자신의 구유 속 먹이를 가져가도 좋다고 허락한다. 생쥐 동생들은 언니 생쥐가 가져오는 콩 조각과 무 조각을 먹다가 조금 자라자 드디어 황소 아저씨를 찾아간다.

처음엔 생쥐 남매가 황소 아저씨를 만나러 가면서 고드름을 녹여 눈곱을 닦고, 콧구멍과 수염을 씻고, 코딱지를 떼는 장면을 좋아했는데 점차 황소 아저씨가 생쥐들을 대하는 태도에 매료됐다. "얘들아, 구유 안에 똥누면 안 된다." "예!" "오줌도 누면 안 되고 코딱지 묻혀도 안 된다." "예!"

조금 무뚝뚝하게 느껴지는 황소 아저씨의 대사를 통해 '친절이란 말이 아니라 행동에 있다'는 걸 배웠다. 친절을 베풀 때 모든 것을 다 줄 필요가 없으며, 마땅히 지켜야 할 예의와 거리를 주장할 수 있음을 배웠다. 또한 도움을 받으면서도 주눅 들지 않는 생쥐들을 보며 도움을 받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배웠다. 혼자 살던 황소 아저씨가 생쥐 남매 덕에 외롭지 않은 겨울을 나게 된 걸 통해 좋은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적이란 걸 배웠다. 외롭게 살던 황소 아저씨에게 생쥐 남매들은 선물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가장 힘든 순간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새로운 길로, 그것도 아주 멋진 길로 접어든 거다. 어쩌면 소중한 것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은 소중한 걸 잃고 모든 게 무너진 것만 같은 순간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