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드루킹 스캔들'을 "사생 팬의 범죄"라고 했다. 현 여권을 일방적으로 추종하던 개인의 일탈이라는 것이다. 김경수 의원도 그렇게 주장했고 경찰도 뒷받침했다. 20일 이 구도가 무너졌다. '드루킹' 김동원(49)씨에 대한 김 의원의 '지시'로 볼 수 있는 드루킹의 휴대전화 문자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일방적 관계 아니었다

경찰은 이날 김 의원이 2016년 11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드루킹에게 10개의 기사 인터넷 주소(URL) 목록을 보냈다고 밝혔다. 역시 은밀한 대화를 나눌 때 이용하는 보안 메신저 프로그램인 텔레그램에서 발견했다. '홍보해 주세요' '네이버 댓글은 원래 반응이 이런가요'라는 김 의원의 문자도 남아 있었다. 목록을 받은 드루킹은 '처리하겠습니다'고 답했다. '지시'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 의원이 보낸 기사 목록 10개 가운데 8개가 작년 5월 대선 이전이다. 민주당 주장대로 '사생 팬의 일탈'이라면 김 의원은 그 일탈을 이용하려고 한 것이다.

두 사람 관계가 '일방적'이 아니라는 점은 또 다른 휴대전화 문자를 통해서 입증됐다. 경찰은 이들이 '시그널'로도 접촉했다고 밝혔다. 시그널은 텔레그램처럼 해외에 서버가 있어 보안이 뛰어난 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은 이 시그널 대화방에서 16개의 김 의원 문자와 39개의 드루킹 문자를 발견했다고 공개했다. 문자가 오간 시기는 2017년 1~3월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5월 대선'이 확정되던 때였다. 경찰은 "인터넷 기사 목록이 아니라 대화"라고 했다.

◇드루킹, '지시'를 처리한 듯

김 의원이 드루킹에게 보낸 기사엔 여러 댓글이 달렸다. 이 댓글에서 드루킹이 이끌던 '경공모(경제적 공진화 모임)' 회원들의 흔적이 발견된다. '막판 실수 땐 치명상… 문 캠프 SNS·댄스 자제령' 기사에는 'tuna****'라는 아이디로 '19대 대통령은 역시 문재인'이라는 댓글이 달려 있다. 드루킹의 아이디가 'tuna69'이다. 네이버에서 댓글 아이디는 앞부분만 공개된다. 역시 김 의원이 목록을 보낸 기사인 '문재인 측, 치매설 유포자 경찰에 수사 의뢰… 강력 대응' 기사엔 아이디 'mapo****'가 댓글을 달았다. 지지율이 상승하던 이재명 후보와 보수 세력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mapo****'는 경공모 관련 인터넷 게시판에서 자주 보이는 아이디다.

경찰은 경공모의 자금 출처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경공모는 외부에 자신들의 연간 운영 자금이 11억원이며, 회원 상대 강의료와 비누 판매 등으로 자금을 조달한다고 했다. 경찰은 경공모 회원인 김모(49)씨가 자금 관련 업무를 총괄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20일 김씨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김씨는 회원들 사이에서 '파로스'로 불린다. 경찰은 "이 사건으로 입건된 5명 이외 사람이 회계 책임자"라고 했다.

◇3월 親文 기사 댓글도 조작

경찰은 여전히 대선 이후의 댓글 수사에 집중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드루킹이 지난 1월 17일 '평창 남북 단일팀 비판' 댓글 이외에 추가로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댓글을 조작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드루킹이 지난 3월 김 의원에게 보낸 3100여개 기사 목록 가운데 6개 기사의 댓글 추천 수가 조작됐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 국정 지지도 74%' '문 대통령, 남북 이으면 한반도 운명 변화'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다. 이번엔 205개 아이디가 댓글 조작에 동원됐다. 경찰은 "3100여개 중 우선 6개를 확인했다"며 "댓글 조작이 더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3월은 드루킹이 인사 청탁 거절로 여권과 사이가 벌어진 이후다. '1월 댓글 조작' 혐의로 구속되기 직전이었다. 이 시기에 여권에 유리한 기사의 댓글을 조작했다. 드루킹과 여권의 우호적 관계가 3월까지 이어졌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흔적들이다.

☞보안 메신저 '시그널'

시그널 이미지

해외에서 최고 보안 등급을 받은 메신저 앱 중 하나. 미국 국가안보국 직원이 민간인을 사찰했다고 폭로한 뒤 러시아로 망명한 에드워드 스노든과 국제 테러조직 IS 등이 썼던 메신저로 유명하다. 전자프런티어재단(EFF)의 2016년 '보안 메시지 서비스 평가표'에 따르면 시그널은 7점 만점을 받아 텔레그램(4점)보다 보안 등급이 높다. 메시지 발송부터 도착까지 전 과정의 보안이 유지되고, 메신저 서버에 대화 내용이 저장되지 않는 게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