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은 19대 국회 정무위원 시절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예산을 지원받는 미국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USKI)의 예산·사업 운용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홍일표 청와대 정책실 행정관은 19대 국회 때 김 전 의원의 보좌관이었고, 작년 USKI 문제에 의견을 내는 등 USKI 예산 지원 중단 사태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은 당사자다. 그런 홍 행정관의 아내인 장모(감사원 국장)씨가 USKI 측에 '방문연구원으로 뽑아주면 남편이 김기식 전 원장과 USKI 간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의 이메일을 보낸 것은 남편의 지위를 앞세운 로비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는 게 야당 주장이다.

장씨가 구재회 USKI 소장 앞으로 이메일을 보낸 작년 1월 27일은 1년간 국비 연수를 가기 위해 USKI의 방문연구원 선발에 지원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USKI 측은 애초 장씨를 연구원으로 받는 것에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장씨는 이런 USKI의 태도가 자신의 남편과 김 전 원장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장씨가 방문연구원을 지원했을 당시에도 김 전 의원과 가까운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이 USKI의 예산·사업 운용과 구 소장 장기 재직을 계속 문제 삼았다.

장씨가 연구원으로 선발되기 위해 남편이 이 같은 불편한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로비성 제안을 한 것 아니냐고 야당은 보고 있다. 결국 장씨는 USKI 방문연구원으로 선발돼 작년 3월부터 1년간 국비 연수를 했다. 남편인 홍 행정관의 영향력이 사실상 작용한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장씨가 USKI 측에 "나를 뽑아주면 감사원이 매우 의미 있는 결정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감사원은 국책 연구기관인 KIEP의 예산 결산을 감사한다. 이메일을 공개한 바른미래당 이태규 의원은 "KIEP의 예산을 지원받는 USKI에 감사원과의 관계까지 언급한 것은 매우 위협적인 행동"이라고 했다. 감사원은 이날 장씨를 대기 발령하고 감찰에 착수했다. 장씨는 이날 언론에 "내가 홍 행정관 아내라는 점 때문에 연구원 선정에 부정적인 것 같아 오해하지 말라고 쓴 것"이라며 "압력이나 특혜를 주겠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장씨가 방문연구원으로 선정된 이후 전개된 상황을 보면 홍 행정관이 중재자 역할보단 USKI에 압박을 더 강화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KIEP는 현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11월 USKI에 구 소장 교체를 공식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KIEP 김준동 부위원장은 청와대로 홍 행정관을 찾아가 USKI 문제를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부위원장이 "홍 행정관 측에서 냉정한 평가와 과감한 대안(개선 계획)을 제시해 달라고 한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USKI 관계자에게 보낸 사실도 드러났다. USKI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연구소 내에서 '장씨가 남편을 거론하며 연구원으로 받아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라는 불만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했다.

장씨의 이메일이 공개되면서 청와대의 '거짓 해명'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9일 장씨가 USKI 방문연구원으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청탁이 있었을 수 있다는 내용의 본지 보도에 대해 "확인 결과 정당하게 국가 비용으로 연구를 갔다 온 것"이라고 했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마치 부인이 USKI에 들어가는 걸 부탁한 것처럼 기사가 보도됐다"며 "유감을 표명한다"고 했었다. 해당 보도에 대해 '다른 기사를 베껴 쓴다'는 뜻을 가진 일본어 은어인 '우라까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기사 쓸 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고도 했다.

청와대는 USKI 지원 예산이 삭감된 이유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른 설명을 내놨었다. 지난 7~8일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예산 삭감 근거로 "당시 여야 합의로 '불투명한 운영 상황을 개선하고 이를 보고하라'는 부대 의견을 달았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당시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록에는 여야 합의가 아닌 야당 반대 의견이 있었다. 부대 의견 어디에도 청와대가 설명한 내용은 없었다. 문제가 되자 이 관계자는 "속기록을 들여다보고 해야 하는데 이 내용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