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남부의 과다르 항구는 중국이 '21세기 실크로드'라고 주장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의 핵심 지역 중 하나다. 중국은 2013년 이곳을 이른바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의 출발점으로 삼고 항만 개발 등에 수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해까지도 배는 한 달에 한두 척만 정박했고, 컨테이너선도 지난 3월에야 처음 정박했다. 계산기를 두드리면 도저히 할 수 없는 투자가 이뤄진 것이다.
미국의 싱크탱크 C4ADS는 17일(현지 시각) "저개발국가의 인프라 개발 지원이라는 명분으로 진행되는 중국의 일대일로가 사실상 군사 전략에 기반을 둔 것이기 때문에 이런 투자가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중국이 투자한 인도·태평양의 항구들은 대부분 경제성은 없지만, 믈라카 해협과 순다해협, 페르시아만과 홍해 등의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이 같은 전략적 투자는 '믈라카 딜레마' 때문으로 풀이된다. 중국이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각종 에너지를 자국으로 실어나르려면 배들이 말레이시아의 좁은 믈라카 해협을 통과해야만 한다. 미국이 이를 틀어막으면 최단 거리 에너지 수송로가 봉쇄당한다. 이 때문에 에너지 수송로 곳곳에 자신의 거점을 만들어 놓고 이에 대한 군사 거점화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것이 C4ADS의 분석이다.
중국이 2016년 말레이시아 서부의 믈라카 해협 인근 '믈라카 게이트웨이' 항구 건설에 80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믈라카 해협에 어떻게든 교두보를 마련하려 한 것이다. 세계은행은 같은 해 말레이 서해안 개발사업에 대해 경제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파키스탄 과다르 항구에 대한 투자도 이와 비슷하다. 미 국방부는 지난해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중국이 가장 해외 군사기지를 세우고 싶어 하는 곳은 파키스탄"이라고 했다. 중국이 과다르를 확보해 송유관을 중국 서부로 건설하면 믈라카 해협을 거치지 않고 에너지를 공급할 길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파키스탄 지역의 불안한 치안 상황을 구실로 중국이 군대를 파견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은 캄보디아 코콩 신항 개발에도 투자했다. C4ADS에 따르면 중국은 이 투자를 통해 단돈 100만달러로 캄보디아 해안선 20%에 해당하는 360㎢ 땅의 개발권을 얻기도 했다. 코콩 신항은 동남아의 정중앙에 있어 중국의 남방 진출 거점 역할을 할 수 있다. 여기에 중국이 투자한 인도네시아의 탄중 프리오크 항구는 믈라카 해협이 막힐 경우 우회할 수 있는 인도네시아의 순다해협에 있다. 중국은 동아프리카 홍해 끝자락의 지부티에 군사기지를 지어 수에즈 운하의 입구를 틀어막을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기도 했다.
중국의 이 같은 투자는 군사적 목적에서 철저히 계획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 해군연구소는 2014년 지부티와 파키스탄의 과다르,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등을 중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핵심 지역으로 선정했다. 실제 중국의 투자는 이와 상당히 유사하게 이뤄졌다고 C4ADS는 분석했다. 또 중국은 선민후군(先民後軍) 전략으로 일단 민간 투자를 통해 핵심 지역에 침투하고, 향후 이를 군사 지원 기지로 바꾸려는 전략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은 겉으로는 '다 퍼주기'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가시를 품고 있다. 파키스탄은 일대일로 사업과 관련해 620억달러(약 66조원)의 빚을 중국에 지고 있다. 스리랑카 함반토타항 개발의 경우엔 이자율이 13%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리카 지부티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대외 부채 비율도 50%에서 85%로 크게 늘었다. '차이나 머니'에 기대어 경제성장을 이루려 하지만, 오히려 수혜국들은 빚더미에 빠지고 자칫 '경제 주권'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누구도 공짜로 돈을 주는 사람은 없다"며 "중국에 진 빚으로 인해 지부티와 파키스탄, 라오스 등은 위험한 상황에 빠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