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에서 1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 재판에서 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최 의원에게 1억원을 준 게 맞는다고 증언했다. 이 전 원장은 그러나 “내가 최경환에게 뇌물을 줄 '군번'이 아니다"라며 대가성은 부인했다.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뇌물을 준 게 아니고 고마운 마음에 준 격려금이라는 취지다.

이병기 전 국정원장(왼쪽)과 최경환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조의연) 심리로 열린 최 의원의 첫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 전 원장은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을 통해 최 의원에게 1억원을 줬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원장으로 취임했을 당시 국정원은 ‘댓글 조작 사건’ 등으로 어려웠다”며 "국정원 예산관과 이헌수 기조실장이 제 방에 왔다가 '기획재정부 쪽에 원장님이 전화 한 번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이 전 원장은 “제가 명색이 원장이고 박근혜 대선 캠프에 있던 사람이니 가벼운 기분으로 '전화 한 번 하마'라고 했다"며 "최 의원에게도 대단히 심각한 톤이 아닌 가볍게 '예산 좀 잘 도와줘라. 인건비도 올랐는데 MB(이명박) 정부 때부터 예산이 동결됐으니 협조해 줬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전화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원안보다 예산안이 증액돼 고마움의 표시로 격려금 1억원을 줬다”고 했다.

검찰에 따르면 최 의원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던 2014년 10월 23일 부총리 집무실에서 이 전 원장의 지시를 받은 이 전 기조실장으로부터 국정원 특수활동비 1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최 의원은 이 전 원장으로부터 돈을 받기 전에 “2015년도 예산안 편성 시 국정원 예산을 늘려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 전 원장은 그러나 개인적인 대가를 바라고 1억원을 건넨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검찰이 국정원장 자리 보전 등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1억원을 준 것이냐고 묻자 언성을 높이며 “그렇다면 최 의원 말처럼 할복자살을 하겠다”며 “(애초부터 나는) 국정원장직을 맡지 않으려고 난리를 떨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전 원장은 자신이 최 의원에게 보낸 1억원이 당시에는 문제가 될 줄 몰랐다고 했다. 그는 “결국 내 책임이지만 수년간 예산을 맡았던 (이헌수 당시) 기조실장이 내게 안 된다고 했다면 안 했을 것”이라며 “상의는 했지만 이 전 기조실장이 문제없다고 해서 최 의원에게 갖다 줬다”고 말했다.

이 전 원장은 “나쁘다면 나쁜, 악습이라면 악습”이라며 “차라리 이 기회에 국정원에 있는 특활비를 아예 없애도 괜찮을 것 같다. 그렇게 투명한 사회가 되는 게 좋지 (특활비가) 있는 동안 (악습이) 계속될 것 같다”고 했다.

한편 이날 최 의원 측은 이 전 원장으로부터 1억원을 건네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고 주장했다. 최 의원 측은 “이헌수 전 기조실장으로부터 1억원을 전달받은 사실이 없고, 설령 건네졌다고 해도 예산 등 직무 관련성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 전 원장은 자신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일 할 때 최 의원이 전화를 걸어와 검찰 수사를 무마해달라고 요청했다고도 증언했다. 이 전 원장은 “중요해서 기억이 나는 게 몇 가지 있다”며 “예를 들어 청와대 있을 때에도 검찰 조사 좀 안 받게 해달라고 (최 의원이 전화했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