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미 연예전문지 ‘내셔널인콰이어러’의 모회사 ‘아메리칸 미디어(AMI)’의 CEO(최고경영자)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혼외자녀가 있다”고 주장한 남성에게 3만달러를 지불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AP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AP는 “AMI와 내셔널인콰이어러의 전현직 직원들을 통해 디노 사주딘이라는 남성이 AMI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전직 트럼프타워 경비원 출신인 사주딘은 “트럼프 대통령이 가정부와 혼외자녀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잡지에 독점 제공하고 그 대가로 3만달러를 받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보도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 내셔널인콰이어러의 자매지인 ‘레이더온라인’은 성명을 통해 “내셔널인콰이어러는 이 이야기를 보도하기 위해 4주간 취재에 나섰으나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돼 기사를 내지 않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4월 9일 백악관에서 군 지휘관들과 만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그와 성관계를 했다고 주장한 전직 포르노 배우에게 입막음용으로 13만달러를 전달한 자신의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의 자택과 사무실을 미 연방수사국(FBI)과 연방검찰 수사관들이 압수수색한 것과 관련, “마녀사냥”이자 “미국에 대한 공격”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AP에 따르면 사주딘과 AMI 소속 기자 1명은 2015년 말 대선을 앞두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한 맥도날드 식당에서 만났다. 당시 사주딘은 이미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잡지에 독점 제공하는 데 동의하고 계약을 확정짓기 위해 기자와 만난 것으로 확인됐으며, 계약서에는 해당 이야기를 제 3자에게 발설하면 100만달러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조항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내셔널인콰이어러의 딜런 하워드 편집국장은 “남성의 주장이 사실일 경우 수백, 수천권의 잡지를 팔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 사주딘과 계약을 했지만 결국 그의 이야기는 증거와 신뢰도가 부족했다”며 “불행히도 사주딘은 (돈만 받고) 헤엄쳐 가버린 한마리 물고기에 불과하다”고 했다.

전직 트럼프타워 경비원 디노 사주딘이 2018년 4월 12일 발표한 성명. 사주딘은 성명에서 “트럼프타워에 근무할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자식을 낳았던 전직 가정부에 대해 비판하면 안된다는 지침을 받았다”고 했다.

AP가 취재한 복수의 소식통은 이들과 정반대의 주장을 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내셔널인콰이어러 기자들은 기사 마감을 얼마 남기지 않고 윗선으로부터 취재 중지 명령을 받았다. 그 뿐만 아니라 잠복 등 연예전문지 특유의 취재 기술도 동원하지 않았다.

내셔널인콰이어러에서 약 30년을 기자로 근무했던 제리 조지는 이를 두고 “캐치 앤 킬”이라며 “AMI는 내지도 않을 기사 때문에 3만달러나 되는 수표를 뿌리고 다닐 리 없다”고 꼬집었다. 캐치 앤 킬은 연예전문지들이 주로 특정 인물에게 대가를 받고 부정적인 기사의 보도를 막기 위해 취재원으로부터 이야기를 산 뒤, 묻는 방식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친한 내셔널 인콰이어러가 대선을 앞두고 그의 뒤를 봐줬다는 지적이다.

조지는 사주딘이 이야기를 누설할 경우 물기로 한 100만달러의 위약금도 의심스럽다고 했다. 그는 “100만달러라는 위약금은 내셔널인콰이어러에 있을 때 듣도 보도 못한 큰 액수”라며 “취재원에게 기사거리를 얻는 것이 목적이라면 선불을 할 이유도 없다. 내셔널인콰이어러의 관행에서 벗어날 뿐더러 비싸다”고 했다.

미 시사주간지 뉴요커는 “사주딘에게 3만달러가 건네진 직후, 데이비드 페커 AMI 최고경영자(CEO)가 나서 기자들에게 취재 중단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페커 CEO는 친구 사이로 알려졌다.

AMI는 성인잡지 ‘플레이보이’ 모델로 활동했던 캐런 맥두걸에게 트럼프 대통령과의 혼외관계를 누설하지 않는 대가로 15만달러를 지불한 기업이기도 하다. 맥두걸은 현재 트럼프 대통령과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는 스테파니 클리포드 전직 포르노 배우에 이어 입막음용 합의금을 받았다고 주장한 두번째 여성이다.

AMI는 페커 CEO가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를 받거나 트럼프 대통령 측에 취재 협조를 요청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이 같은 성격의 이야기를 기사화하기 전, 당사자에게 이를 알리는 절차에 따라 사주딘의 주장을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인단에 알린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AMI 직원들에 따르면, AMI는 소속 기자·직원들과 “내부 편집 지침과 결정 과정을 밖으로 누설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계약서를 체결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혼외자녀를 둔 것으로 알려진 여성은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AP는 “이 여성은 트럼프 대통령과 관계를 가진 적도 없고 내셔널인콰이어러가 이 이야기를 돈을 주고 샀다는 사실도 몰랐다고 주장했다”며 “사주딘의 주장이 사실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AP는 “취재 도중 AMI가 (기사의)정확도를 빌미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며 “뉴욕의 로펌도 고용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관련된 부정적인 보도를 막기 위해 내셔널인콰이어러가 AP를 협박했다는 것이다.

AMI가 트럼프 대통령의 평판 보호를 위해 성인잡지 모델 출신인 맥두걸에 이어 사주딘까지 매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미 연방수사국(FBI)의 행보가 주목된다. 앞서 FBI는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인 마이클 코언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며 '트럼프 성추문'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를 예고했다.

코언은 미 대선 직전인 2016년 10월 트럼프 대통령과 성관계를 했다고 주장한 전직 포르노 배우 클리포드에게 13만달러를 입막음용으로 전달한 인물이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그는 AMI가 맥두걸과 맺은 계약 내용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수사의 관건은 합의금의 출처다. FBI는 이 돈이 트럼프그룹이나 트럼프 대통령 측에서 왔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코언은 현재 합의금 지급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트럼프그룹이나 트럼프 대통령과는 관계없이 자신이 직접 지급한 ‘개인 간 거래’라고 주장하고 있다.

NYT는 “FBI가 코언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할 당시 코언과 페커 CEO가 주고받은 모든 연락도 찾으려 했다”며 “FBI는 AMI가 맥두걸에 지급한 15만달러에 대해 코언이 알고 있는지도 수사 중”이라고 전했다. AMI가 단순히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유로 맥두걸의 이야기를 묻으려고 했다기에는 합의금의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는 이유에서다.

FBI는 이밖에 코언이 클리포드에게 합의금을 주는 과정에서 미 연방선거법을 위반했는지도 조사 중이다. 돈으로 클리포드의 침묵을 산 행위는 일종의 ‘선거자금 기부’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 선거법에 따르면 개인이 대선 진영에 기부할 수 있는 금액의 한도는 2700달러다.

코언이 클리포드에게 건넨 13만달러는 미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에 신고되지 않은 금액으로, 사취 행위로 간주될 수도 있다. 미 선거법상 사취 행위는 최대 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는 중죄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