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혀를 수백 배 확대한 듯한 거대한 구조물 셋이 전시장에서 관객을 맞는다. 자세히 보니 어딘가 한글 자음을 닮았다. 'ㄱ' 'ㄴ' 'ㄹ'. 입 밖으로 이 소리를 낼 때 혀가 구부러지는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다. 바로 이 모양을 본떠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했다.

지난 9일 개막해 6월 3일까지 계속되는 서울 용산 국립한글박물관의 특별전 '소리×글자: 한글디자인'에 출품된 작가 장성의 현대미술 작품 '모비/혀 ㄱ ㄴ ㄹ'. 세종 즉위 600주년 기념으로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소리'를 주제로 한 한글실험프로젝트다. 일찍이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에서 정인지가 "소리를 바탕으로 글자를 만들어 만물의 정을 통하게 했다"고 한 것을 근거로, 소리와 상호작용하는 한글의 문자적 유연성에 주목해 '소리'가 '글자'로 탄생하는 과정을 영상과 작품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5~6월 미국 LA 한국문화원에서 열렸던 전시를 확대 개편한 것이다.

한글 자음을 소리 낼 때 혀의 모습을 형상화한 장성의‘모비/혀 ㄱ ㄴ ㄹ’.

정진열의 작품 '도시의 소음들: LA'는 LA 해변에서 발생한 소리를 채집하고 한글 표기로 풀어낸 작업이다. 모니터에서 지도를 클릭하면 그곳에서 나는 소리가 한글로 표기되는데, 도로 위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는 ‘붛 왛 왛 왛 왛 ㅋ 쓯 쓯 쓯’, 해변에서 배가 흔들리는 소리는 ‘끼힡끼힡 왙덜크’로 나온다. 세상의 거의 모든 소리를 다 적을 수 있는 문자가 한글이라는 얘기다.

네임리스의 '선들 사이'는 자음 5개와 모음 3개로 이뤄진 한글의 기본자 8자(ㄱ ㄴ ㅁ ㅅ ㅇ ㅣ ㅡ ·)를 거석(巨石) 구조물처럼 입체화하고 그 사이 비워진 공간을 보여준다. 이 8자로부터 1만2272자의 글자 조합이 가능하다는 '공간의 무한 변주'를 의미하는 것이다.

쉴 새 없이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구조물 속에서 '숨은 한글 찾기' 하는 재미가 쏠쏠한 빠키의 '문자를 만들어 내는 움직임', 조합 문자인 한글을 생활 소품으로 나타낸 하지훈의 '한글 소반'도 주목되는 작품이다. 박영국 국립한글박물관장은 "한글 디자인의 다양한 실험을 통해 한글의 미래 가능성을 열어 보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02)2124-6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