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논설위원

윌리엄 태프트(1857~1930)는 미국 역사에서 특별한 존재다. 대통령을 지내고 연방대법원장에도 오른 유일한 사람이다. 원래 판사였다가 정치에 뛰어든 그의 대통령 4년에 대해선 '무능하고 뚱뚱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이 지금의 역할과 위상을 갖게 된 건 태프트 덕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법원장 시절에 대한 평가는 후하다.

그는 사법 행정에서 실력을 발휘했다. 1921년 태프트가 대법원장이 됐을 때, 연방대법원은 사건의 홍수(洪水)에 떠내려가기 직전이었다. 접수된 사건 재판을 시작하는 데 3년씩 걸릴 정도였다. 재판 당사자들의 불만과 대법원 불신이 하늘을 찔렀다.

그는 대법관 세 명을 문제 해결에 투입했다. 직접 나서서 법 개정의 열쇠를 쥔 의회와 변호사 단체를 설득하고, 외국으로 날아가 관련 제도를 배워 오기도 했다. 그렇게 4년간 공을 들인 끝에 '판사들의 법'(Judge's bill)으로 불리는 상고허가제를 이끌어냈다. 웬만한 사건은 주(州)대법원이 상고심(3심)을 담당하고 연방대법원은 국가적 의제나 헌법 쟁점에 집중하는 사법 체계를 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상고심 적체 해결을 법원 행정의 최우선 과제로 여겼다. 취임 초 "태프트를 존경한다"고 한 건 그냥 해본 말이 아니었다. 간단한 사건 상고심은 상고법원을 신설해 맡기고 복잡하거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은 대법원이 재판하는 방안을 만들었다.

법원행정처는 국회를 설득했고, 법원장들은 대국민 홍보에 나섰다. 국회의원 과반(過半)이 법안을 발의했으나 법 통과는 끝내 실패했다. 그 결과 우리 대법원은 여전히 100년 전 미 연방대법원의 모습에 머물러 있다.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져 간다. 지난해 '심리불속행' 기각률이 77%를 넘어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는 통계가 최근 공개됐다. 50%대 초반이던 5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심리불속행은 말 그대로 심리하지 않고 사건을 끝내는 것이다. 판결문도 없는 '닥치고 기각'이다. 모든 사건을 재판한다는 대법원이 실제론 10건 중 2건만 한다는 얘기다. 대법원의 분쟁 해결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것이다. 아예 포기한 것 아니냐는 느낌마저 준다. 사건 당사자와 변호사들은 "기절초풍할 노릇"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심각하게 여기는 것 같지 않다. "내 취임 자체가 개혁의 상징"이라고 했던 김명수 대법원장은 '법관 자치(自治)'를 사법 개혁의 핵심으로 보는 모양이다. 판사들이 스스로 무슨 재판을 맡을지 사무 분담을 하고 대표회의를 통해 목소리를 내는 '법원판(版) 상향식 민주주의' 실험이 한창이다. '소원수리'가 가능해진 판사들은 환호할지 모르나, 그렇게 한다고 법률 서비스가 향상되고 재판 수준이 높아질지 의문이다.

상고심 문제는 민간 참여 위원회가 논의한다고 한다. 위원회는 아이디어 수렴 기구이지 책임지는 조직은 아니다. 대법원장이 직접 챙기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그나마 논의 우선순위에서도 밀린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법원 안팎에선 "전임자가 추진했던 '적폐 정책'이라서 그러는 모양"이라는 말까지 돌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행정처를 상대로 한 '적폐 청산' 조사는 언제 끝날지 가늠할 수도 없다.

상고심 적체는 법원 불신을 야기하는 핵심 문제다. 상고법원이 아니라면 대법관 증원, 상고허가제, 대법원 구성 이원화(二元化) 중에서 서둘러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이대로 가면 김 대법원장이 말하는 '좋은 재판'은 영영 불가능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