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려진 밥상(경기를 의미) 좀 그만 걷어차고 이기는 것 좀 보고 싶어요."(12년째 수원 삼성 팬 안주영씨)
"서울 축구는 노잼이에요(재미없다). 오늘도 별 볼일 없으면 경기장 안 올지도 몰라요."(10년째 FC 서울 팬 김민구씨)
프로축구 K리그1(1부) 수원 삼성과 FC서울의 경기는 '수퍼 매치'라 불린다. 리그 최고의 라이벌전이란 의미에서다. 하지만 8일 두 팀이 맞붙은 수원월드컵경기장은 '수퍼'란 단어에 어울리는 열기는 종적을 감추고 우울한 분위기만 감돌 뿐이었다. 최근 신통치 않은 양 팀 성적 때문이었다. 서울은 이 경기 전까지 리그 4경기에서 2무 2패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홈팀 수원은 지난 3일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시드니FC(호주)에 1대 4로 완패하는 등 최근 홈 5경기에서 한 번도 못 이겼다.
이런 탓에 경기 전부터 양팀 관중석에선 응원보단 독설(毒舌)을 듣기 더 쉬웠다. 대상은 모두 자기가 응원하는 팀 감독이었다. 수원 팬들은 서정원(48·수원 삼성) 감독, 서울 팬들은 황선홍(50·FC서울) 감독에 대한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듯 '세오(서 감독 별명) OUT' '황새(황 감독 별명) OUT'이란 말이 계속 나왔다. 8세 아들과 함께 서울을 응원하러 온 이진한(44)씨는 "상상도 하기 싫지만 오늘도 지면 유니폼을 장롱에 넣어 두고 경기장에 오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부진한 성적을 낸 팀끼리 맞붙어 '단두대 매치'로 불린 이날 경기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만 증명하고 끝났다. 양팀 선수들은 경기 내내 지루한 공방전을 벌였다. 실점을 피하려는 생각 때문에 적극적인 돌파, 시원한 공격 대신 소극적이고 안전한 플레이로 90분 내내 지루함만 이어졌다. 후반 27분 수원 최성근이 상대 선수 발목을 밟아 퇴장당한 이후에도 균형은 깨지지 않았다. 결국 경기는 0대0으로 끝났다. 종료 휘슬 소리가 울리자 양팀 응원석에서 야유와 휘파람 소리가 쏟아졌다. 상대 팀이 아니라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향한 것이었다.
2008년 4월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6만6000명 수용)에서 열린 수퍼 매치엔 관중이 4만4000여명 들어찼다. 국내프로축구가 프로야구에 밀리는 가운데에도 수퍼 매치는 K리그의 '유일한 자존심'으로 대접받았다. 하지만 몇 년째 두 팀 성적이 부진하고 재미없는 축구를 펼치면서 수퍼 매치조차 외면받고 있다. 8일 수원(4만4000명 수용) 경기 관중 수는 1만3000여명에 그쳤다. 지난해 8월 수원에서 치른 수퍼 매치(2만6000여명)의 절반 수준이며, 역대 최소였다.
이날 경기는 서울 소속으로 K리그 최고 외국인 선수란 평가를 얻었던 데얀(37·몬테네그로)이 수원 이적 후 친정 팀과 치르는 첫 경기였다. 흥행 카드가 없던 것도 아니란 얘기다. 축구계 관계자는 "올 시즌부터 유료 관중만 집계하는 방식으로 달라졌다는 걸 감안해도 충격적인 수치"라고 했다.
서정원 수원 감독과 황선홍 서울 감독은 경기 후 고개부터 숙였다. 서 감독은 "좋은 경기로 팬들에게 보답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다. 황 감독도 "양 팀 모두 적극적이지 못했던 부분이 팬들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축구 팬들은 경기가 끝난 후 인터넷 커뮤니티에 짧고 굵은 평을 남겼다.
"이젠 수퍼 매치라고 부르지 말고 '슬퍼' 매치라고 부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