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오전 아들을 유치원 차량에 넘기고 잠시 뒤 남의 집 아이들을 돌보러 갔다. 이날 하루 동안 서울 성동구 한빛어린이집에서 1일 보조교사로 근무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만 0~2세 영아가 대상인 가정 어린이집이다. 기자는 돌 지난 아이 9명이 속한 '은혜반'에 배정받았다.

오전 9시반쯤 어린이집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평온했다. 먼저 온 아이 3명이 도란도란 놀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가 등원한 오전 10시쯤 되자 점점 아이들 움직임이 빨라지더니 중구난방으로 흩어진 아이들을 눈으로 좇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느껴졌다. 달려든 아이 한 명을 무심코 번쩍 안아줬더니 옆에 있던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나도, 나도" 하는 아이들을 번갈아 안아주다보니 금세 어깨가 뻐근해졌다.

지난 27일 서울 성동구 행당동의 한 어린이집에서 일일 보육 교사로 활동한 본지 김재곤 기자가 한 어린이에게 밥을 먹이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자연스레 시행착오를 겪는 아이에게 눈길이 갔다. 어린이집에 다닌 지 채 한 달이 안 된 정훈이(가명)가 그랬다. 어린이집에 오자마자 울먹거리더니 원장 선생님이 20여 분을 달랜 끝에야 친구들과 합류했다. 이곳 홍부연 원장은 "처음 아이를 보낸 가정에는 처음 한 달간은 아이 상태에 따라 언제든 데려갈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당부한다"고 말했다.

어린이집은 아이들이 처음으로 부모 품을 떠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곳이다. 말 못하는 아이라 하더라도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느낄 수 있다. 정유숙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모든 아이가 충격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성인이 군에 입대하거나 이직했을 때처럼 스트레스를 느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무엇이 적응하는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일까. 두 명의 보육교사는 무심한 부모보다 오히려 더 세심했고, 아이들 간에도 이렇다 할 마찰은 없었다. 잠시나마 긴장감이 감돈 순간은 점심식사 직전 성수(가명)와 정원이(가명)가 같은 인형을 두고 쟁탈전을 벌이다 정원이가 울음을 터뜨렸을 때 정도였다. 이마저도 성수가 손등으로 정원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인형을 넘겨주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그럼에도 정유숙 교수는 "0~2세는 아직 개별적으로 보살핌을 받아야 할 나이이기 때문에 단체생활을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버거울 수 있다"고 말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었다. 성수의 경우 처음 본 기자를 '삼촌'이라고 부르며 따를 정도로 낯도 가리지 않고 성격도 활달했다. 하지만 유독 낮잠 시간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항상 낮잠 시간에 맞춰 엄마가 데리러 왔다. 신기하게도 집에 도착하면 곧바로 잠들어 버린다고 했다. 잠자리 낯가림을 하는 것이다.

기자가 체험한 가정 어린이집(정원 5~20명)은 전체 4만여 어린이집 중 절반(48.8%) 정도를 차지한다. 대다수 어린이집은 유아(3~5세)의 비중이 더 높지만 가정 어린이집의 경우 99%가 영아(0~2세)를 대상으로 운영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보통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영아가 있는 집에선 가정 어린이집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오후 3시쯤 낮잠에서 깨어난 아이들이 간식을 먹고 활동을 재개했다. 그새 친근해졌는지 기자에게 오전보다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오후 4시쯤 되자 엄마들이 하나둘 아이들을 데리러오기 시작했다. 엄마 손을 잡고 어린이집을 나서는 아이들 표정이 한층 더 밝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