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발라드에 전자 드럼 써… '뮤지션들의 뮤지션' 칭호
서늘하되 차갑지 않은, 싸락눈 쌓인 사막같은 윤상의 음악
제주도에 자주 간다. 있는 동안은 육지의 뉴스에서 멀어진다. 외신을 보는 기분이 든다. 얼마 전 여행에서도 그랬다. 습관적으로 켠 SNS에서 한 장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외신을 보는 기분이 아니라 마치, 사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의 한 컷을 보는 듯했다. 윤상과 현송월이 판문점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현송월의 옆자리에 그 누가 있어도 그런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다. 정치인이나 관료는 물론이고 ‘연출’ ‘감독’으로 익숙한 이였어도 놀랍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음악인, 심지어 그와 비슷한 카테고리에 묶이곤 하는 유희열이 그 자리에 있었어도 윤상만큼의 느낌은 주지 않았으리라.
◇ 강수지에서 러블리즈까지… 시대를 가로지르는 히트곡 메이커
어떤 이들에게 그는 ‘꽃보다 청춘’, ‘집밥 백선생’의 예능으로 친숙할 것이다. 심야 라디오 전성기에 유희열, 이적, 김동률 등과 함께 애청자들의 고막을 어루만진 음악가로 기억할 수도 있다. 90년대 초 ‘이별의 그늘’ ‘이별 없는 세상’을 부른 십 대 스타로만 추억하는 사람도 있겠다. 어디 그뿐인가.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부터 러블리즈의 ‘아츄’까지, 90년대부터 2010년대를 가로지르는 히트곡을 뽑아낸 프로듀서이자 청취율 1위 프로그램의 DJ였다. 현재는 용인대에서 강단에 서고 있는 교수이기도 하다. 이런 경력, 혹은 직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윤상을 수식하는 여러 말 중 하나는 ‘뮤지션들의 뮤지션’이다. "우리 시대의 음악인들 중 윤상에게 영향을 안 받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015B 정석원의 이야기가 이를 대변한다. 음악가 중 윤상을 안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도 무시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대중을 편안하게 보듬지만 ‘선수’는 곤혹스럽게 찌른다. 대중적 감성의 곁에 머물되 섬세하고 파격적인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중의 취향보다 딱 반발자국 앞서서 그는 25년이 넘게 온전한 그의 속도로 뛰어 왔다.
데뷔 히트곡 ‘이별의 그늘’부터 보자. 미디와 프로그래밍이 막 도입되던 그 시절, 불문율이 있었다. 발라드곡에서 드럼만큼은 사람이 연주하는 드럼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윤상은 과감하게 전자 드럼을 썼다. 이 노래는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같은 해 발매된 신승훈의 '미소 속에 비친 그대’, 015B의 ‘텅 빈 거리에서’ 같은 노래들이 전형적인 90년대의 감성을 담고 있다면, 이 노래에는 그런 시대성이 옅다. 시대를 타지 않는, 감정의 원형이 건조하게 서 있다. 주의 깊게 다시 이 노래를 들으며 우리는 “윤상이네"한 마디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이제 와서 그때의 노래에 이 한마디를 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쌓아온 음표와 리듬, 그리고 음향의 공집합과 여집합들이다.
◇ 서늘하되 차갑지 않은, 싸락눈 쌓인 사막같은 윤상의 음악
초기의 그는 스타 작곡가이자 하이틴 스타였다. 21세기와 함께 중남미권 음악에 대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그리고 홀연히 미국 떠났다.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러 버클리와 뉴욕대를 거치며 7년의 유학 생활을 했다. 음악에 음학(音學)을 둘렀다. 이 과정에서 엮어온 그의 음악은 뛰어난 지식인의 저술과 같다. 그는 당대의 조류와 기술을 그저 전시하거나 모사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한국 대중음악이라 칭할 수 있는, 어떤 영역에 화학적으로 스며들게 했다.
동서고금의 음악을 재봉선 없는 옷처럼 자연스럽게 엮었다. 자칫 소음이 될 수 있는 소리의 조각들을 꼼꼼하게 엮어 아름다움의 범주에 이식했다. 그런 윤상의 음향와 멜로디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기술로 표현하는 일본 독립영화다. 첨단의 기술과 스케일로 듣는 이의 마음을 무심히 스치는 것이다. 서늘하되 차갑지 않고 따사롭되 뜨겁지 않다. 싸락눈 쌓인 사막이 된다. 안개 끼는 하늘이 된다.
이 낮은 온도 차의, 투명한 대기를 그는 12음계를 미분하여 쌓아 올린 멜로디와 잘은 주파수를 적분하여 흐트린 사운드로 채운다. 발라드로 분류할 수 있는 음악에 냉기가, 댄스로 분류할 수 있는 음악에 온기가 흐른다. 사운드로 만드는 풍성한 채도에 그의 보컬은 명도를 더 한다. 감정의 진폭을 최소화하는, 노래와 읊조림의 경계에 있는 윤상의 목소리는 박창학의 가사와 만나 눈물을 싱겁게 한다. 설렘을 수줍게 한다. 비언어적 소리에 언어의 서정이 얹혀 움직이는 시곗바늘은 나아가길 주저한다. 많은 마침표들이 말줄임표처럼 아련해진다.
이런 그의 음악을 M.O.T.의 이이언은 “얄팍함과는 아주 거리가 먼, 멸균 실에서 만들어진듯한 완벽하고 깔끔한 캐주얼함”이라고 말했다. 그저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윤상 말고도 전자 음악을 파고든 뮤지션은 많다. 월드 뮤직을 시도한 이도 당연히 많았다. 하지만 그들 중 그만큼 대중의 귀를 파고드는 동시에 평단의 멈춤 없는 지지를 받은 이가 있었던가. 내가 그 답을 알지 못하는 이유다. 어디에나 있었으되, 어디에도 매몰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언제나 동시대에 머물러 온 그를 과거의 업적으로만 평가하는 건, 아직 섣부르다. 가수이기보다는 작곡가고자 싶었고, 관성에 얽매이느니 모든 걸 리셋하고 싶어 했던 그는 어디에서 뭘 하건 오직 그 자신 그 자체로 존재한다. 그러니 어쩌면, 놀랄 필요가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음악으로, 방송으로 자신을 담담히 증명해온 그가 평양에서 펼칠 정치로서의 예술을. 비록 윤상이 무대에 서는 일은 없겠지만, 그가 연출할 무대를 보며 인민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진다. 우리가 그의 음악에서 20여 년간 느껴왔던 따뜻한 고독이 그들의 얼굴에서도 읽힐까.
◆ 김작가는 대중음악평론가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남들보다 좋아했다. 사회에 나와서 짧게 다른 일을 하면서도 음악과 연관된 삶을 살더니 자연스럽게 음악에 대해 쓰는 게 업이 됐다. 추상적인 음악을 구체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그 안에 담겨 있는 감수성을 끄집어 내는 걸 지향한다. 저서로는 음악 애호가로서의 삶을 그린 가 있으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