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9일(현지 시각) 북한 핵 협상과 거의 연관성이 없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개정 협상을 연계시킬 수도 있다고 한 것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렛대'를 놓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다음 달 27일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청와대를 중심으로 '단계적 비핵화'를 주장하며 북한을 편드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미국이 바로 경고장을 꺼내 든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하이오주(州)에서 사회 기반 시설을 주제로 한 연설을 하며 북한 핵 협상과 한·미FTA를 연계시키는 것과 관련해 "왜 이러는지 아느냐. 이것이 매우 강력한 (협상) 카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한·미 FTA 개정 협상 결과에 대해 "우리는 한국과 훌륭한 합의를 얻어냈다"고 했다. 협상이 잘됐다고 하면서도 서명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한·미 FTA 협상으로 문재인 정부의 목줄을 잡고 있겠다'는 뜻으로밖에 볼 수 없다. 한국이 북한 쪽에 기울어 비핵화 협상이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경제적 채찍을 들어 한국에 책임을 묻겠다는 '협박'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도 문재인 정부가 대북 제재에서 이탈할 경우와 관련해 "우리는 소위 무역이란 수단을 갖고 있다"고 했었다.

공장 연설에서 한미 FTA 거론 - 29일(현지 시각) 미국 오하이오주 리치필드의 엔지니어 훈련센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공장 근로자들과 기술 연수생들을 상대로 연설하고 있다. 그는 이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거론하며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타결된 이후로 (FTA 협상 서명을) 미룰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시점을 잘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발언은 남북이 다음 달 27일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한 지 12시간쯤 지난 다음 나왔다. 전날 낮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한·미 간에 위대한 협상이 이뤄졌다. 이제 안보에 집중하자"고 했었다. 그러나 이후 남북이 협상 72분 만에 정상회담 일정에 합의하고 청와대에서 '비핵화의 단계적 이행' 목소리가 나오자 트럼프의 기류가 기대에서 우려로 급격히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은 "미국의 고위 관료들은 북핵 대응을 위한 한·미·일 동맹에서 한국을 가장 약한 고리로 생각한다"며 "한국이 북한과의 딜을 성사시키기 위해 서두를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펜타곤 찾은 볼턴… 매티스 “당신이 악마의 화신이라면서요?” -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임명된 존 볼턴(왼쪽)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30일(현지 시각) 미 국방부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매티스는 볼턴을 맞으며 “당신이 실은 악마의 화신이라고 들었다. 만나고 싶었다”며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트위터에서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으로부터 김정은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메시지가 왔다"며 "그러나 동시에 (북한에 대한) 최대 제재와 압박은 어떤 비용을 치르고서라도 유지돼야 한다"고 했다. 북한 김정은의 중국 방문으로 대북 제재가 흐트러질 것을 우려하는 동시에 남북 정상회담의 준비 과정에서 한국이 북한의 숨통을 틔워주는 합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 싱크탱크 관계자는 "남북, 미·북 정상회담이 가까워질수록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 차이는 더 커질 수 있다"며 "조만간 한국과 미국이 충돌하는 '진실의 순간'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한·미 FTA 추가 협상을 통해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충격요법식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WSJ 등 미국 언론들은 "한·미 FTA 개정과 관세 협상이 미국 무역 적자 해소에 도움이 안 된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여기에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경합주인 오하이오주에서 표심을 끌어오려는 '국내용' 발언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은 발언이 아니라 행동을 봐야 정확한 뜻을 알 수 있다"며 "그러나 경제와 안보를 연계시키겠다는 뜻은 지속적으로 밝히고 있어 향후 한·미 동맹이 흔들릴 경우 경제 보복이 있을 가능성은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