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의 프로배구 남자부 챔피언결정 4차전(5전 3선승제)이 열린 인천 계양체육관. 3세트 대한항공 세터 한선수(33)가 띄워 올린 공을 레프트 곽승석(30)이 득점으로 연결했다. 25―20으로 경기가 끝나는 순간, 대한항공 선수들이 모두 코트로 쏟아져 나와 부둥켜안았다. 땀과 눈물이 뒤섞여 구분되지 않았다. 분명한 건 그토록 고대했던 첫 번째 '별(우승 상징)'을 가슴에 품었다는 것이었다.

우승의 순간 - 32년(프로 13년) 무관(無冠) 설움은 이제 없다. 30일 프로배구 V리그 챔피언결정전 4차전에서 현대캐피탈을 세트스코어 3대0으로 눌러 시리즈 3승 1패로 정상에 오른 대한항공 선수들이 우승 확정 직후 한데 엉켜 환호하는 모습.

대한항공은 이날 현대캐피탈을 3대0(25―22 25―17 25―20)으로 꺾어 5전3선승제 시리즈를 3승1패로 마감하며 2005년 프로배구 출범 이후 첫 정상에 올랐다. 대한항공은 앞선 4차례 챔피언전에선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다. 올 시즌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주포 미차 가스파리니(34·슬로베니아)의 강력한 스파이크는 상대 코트를 난타했고, 리베로 정성민(30)은 몸을 던져 공을 살렸다. 서브와 공격, 수비가 조화를 이뤘다.

대한항공의 무관(無冠) 역사는 프로 출범 전까지 거슬러가면 무려 32년에 이른다. 대한항공은 1969년 창단 후 3년 만에 해체됐다가 1986년 재창단했다. 실업리그(1986~2004, 대통령배·슈퍼리그) 시절엔 준우승만 딱 한 번 했다.

한선수, 딸과 함께 MVP 수상 - 챔피언결정전 MVP로 선정된 한선수가 딸을 안은 채 트로피를 들어 올린 모습. 그는 2007년 대한항공에 입단한 지 10년 만에 우승의 꿈을 이뤘다.

사상 첫 우승의 중심엔 팀 주장인 한선수가 있다. 그는 챔프전 내내 신들린 듯한 토스로 동료에게 득점 확률 높은 공격 기회를 제공했다. 그는 이날 챔프전 MVP(최우수선수)로 선정됐다.

한선수는 최근 프로배구 3년 연속 최고 연봉(이번 시즌 5억원)을 받았다. 그러나 동갑내기 유광우(현 우리카드)에 밀려 '2인자' 이미지가 강했다. 2007년 대한항공에서 프로에 데뷔한 후 단 한 번도 챔프전 정상을 밟지 못한 탓이 컸다. 잘생긴 외모 덕분에 많은 팬을 거느리고도 '실력이 과대 평가됐다'는 소리를 들었다. 고집이 세 팀 조직력을 약화시킨다는 소문도 한선수를 괴롭혔다. 박기원 감독이 "감독 지시도 잘 따르고 정말 성실한 선수인데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앞장서 해명할 정도였다.

한선수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어느 때보다 강훈련을 소화하며 칼을 갈았다. 선수 시절부터 같은 팀에서 그를 지켜본 장광균 코치는 "한선수가 겉으론 큰 내색 안 했지만 우승을 못 한 한(恨)이 정말 깊었다"고 했다. 한선수는 우승 후 "(프로 데뷔 후) 10년 만의 응답이다. 오늘 나 자신에게 10점 만점을 주고 싶다"며 "모든 선수가 힘을 합쳐 플레이오프를 어렵게 승리한 게 우승의 힘이 됐다"고 눈물을 쏟았다.

한선수를 비롯해 곽승석, 진상헌(32) 등 대한항공 주축 선수 대부분이 30대다. 이들은 삼성화재와의 플레이오프(3경기)부터 챔프전(4경기)까지 최근 13일간 7경기를 뛰는 강행군을 펼쳤다. 곽승석은 지난 챔프 3차전을 마치고 "이젠 정말 힘들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대한항공 구단 관계자는 "체력이 바닥난 지 오래지만 '이번엔 꼭 우승하자'는 선수들의 정신력으로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가스파리니도 집중력을 유지하며 챔프전 한 경기 평균 26점을 쏟아부었다.

세터 한선수와 국가대표 레프트 2인(곽승석·정지석)이 버티는 대한항공은 수년 전부터 우승 전력이었지만 '모래알' 조직력 때문에 중요한 순간 번번이 무너졌다. 2016년 부임한 프로배구 최고령 사령탑 박기원(67) 감독이 '원 팀'을 강조하며 팀이 '단단한 바위'가 됐다. 장광균 코치는 "(감독님은) 세세한 전략을 세워놓기보다 '판단은 네가 하라'며 생각하는 배구를 하도록 한다. 그러면서 선수끼리 머리를 맞대는 일이 많아져 조직력이 끈끈해졌다"고 말했다. 박기원 감독은 우승을 확정하고 "나이도 있어서… 안 울려고 참고 있다(웃음). 나를 믿고 따라준 선수들에게 고맙다. 멀고 먼 길을 돌아 드디어 배구 인생의 퍼즐이 완성됐다"고 말했다. 노(老) 감독의 눈시울이 어느새 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