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전위적인 미술가이자 교육자였던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1921~1986)는 1982년 제7회 카셀 도큐멘타에 초대됐다. 독일 중부의 도시 카셀에서 1955년 이래 5년마다 개최되는 도큐멘타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 미술 행사다.
보이스는 높이 1m 남짓의 현무암 비석 7000점을 도시 한가운데에 부려놓고, 그 어마어마한 돌무더기의 끝에 떡갈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그가 구상한 '조각'은 도시 전체에 7000그루의 떡갈나무를 심는 것.
나무를 한 그루 심을 때마다 현무암 비석도 그 옆으로 옮겨졌으니, 돌무더기가 줄어들수록, 도시 곳곳에 나무가 늘어났다. 마지막 7000그루째의 나무는 1987년 제8회 도큐멘타의 개막과 함께 식수됐다. 그때는 보이스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지금 카셀에는 그때 그 나무들이 자라 울창한 가로수를 이뤘다. 주차할 자리도 비좁은 판에 그 많은 나무를 심는다며 비난하던 이들은 자취를 감췄다. 어린 나무 옆에 박혀 있던 회색빛의 거친 비석은 해가 갈수록 자라나는 나무에 가려 차츰 존재감을 잃었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자라나 독일군으로 2차 대전에도 참전했던 보이스는 비석을 파괴와 개발이 횡행하던 '20세기 말의 상징'이라고 했다. 그 옆에서 지루하도록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자라나는 나무는 미래의 상징이다.
보이스는 평범한 개인들이 예술가가 되어 창의력을 발휘하면 사회 전체가 위대한 예술품이 되는 ‘혁명’을 이룬다고 믿었다. 그래서 허황된 이상주의자라는 비판도 받을 만큼 받았다. 그러나 콘크리트로 뒤덮였던 도시를 관통하는 푸른 숲길은 허황된 이상이 현실이 된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