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경(總警)이 카지노를 운영했다고? 그것도 마카오에서?"
지난해 8월 23일, 서울 서대문경찰서 지능팀 A수사관은 고소장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피고소인 '정OO'이 현직 경찰이자 '경찰의 꽃'이라고 불리는 총경 계급이었기 때문이다. 총경은 일선 경찰서장 계급이다.

고소인 박모(가명)씨 주장은 더 믿기 어려웠다. 정 총경이 마카오에 불법 사설(私設) 카지노 업주라는 것이다. “그 사람이 내 돈 20억원을 빌려가서 갚지 않고 있어요.” 울분에 찬 목소리였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2012년 아는 사람 소개로 정 총경을 소개 받았다. 당시 그는 서울지역 한 경찰서의 중간 간부였다. 이 자리에서 정 총경은 마카오 사설(私設) 카지노 투자를 권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자를 많이 주는 사업” “절대 안전하다” “우리 가족(정 총경 가족)이 사업에 관여하고 있다”는 솔깃한 말을 던졌다.

서울 서대문 경찰서는 지난 달 5일 해외 사설 카지노 운영, 사기 등 혐의로 정모 총경을 서울서부지검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설마 경찰이 돈을 떼어 먹겠나 싶었죠.” 박씨는 일단 6000만원을 투자했다. 처음에는 정 총경이 장담한대로 이자가 들어왔다. 확신이 생기자 박씨는 투자금 규모를 불렸다. 실제 정 총경 계좌에는 박씨가 직접 투자금을 입금한 내역이 나와 있다고 경찰은 전했다.

급기야 박씨는 다른 사업을 접고, 마카오 카지노 투자에 ‘올인(다 걸기)’했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박씨 총 투자액은 30여억원.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관이 “거래내역이 너무 많아 박씨 스스로 다 기억해 내지 못할 정도였다”고 말 할 정도다.

박씨의 ‘완벽한 투자’는 지난해부터 삐걱거렸다. 정 총경이 약속한 이자가 이때부터 제대로 들어오지 않기 시작한 것. 이에 박씨가 투자했던 원금(元金) 30여억원을 돌려달라고 하자, 정 총경은 “돌려주지 못하겠다”고 버텼다. 고소장을 들고 서대문서(署)를 찾아온 박씨는 “경찰 고위 간부여서 믿고 돈을 빌려줬던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피해자는 박씨 뿐만이 아니었다. 서울 혜화경찰서에도 정 총경에 대한 고소장이 접수됐다. 이번에는 프로골퍼 김모씨가 “정 총경이 내 돈을 떼어 먹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피해액은 5억원에 달했다.

두 사람이 말하는 피해 경위는 비슷했다. 골퍼 김씨도 아는 사람 소개로 정 총경을 만났다. 이때가 2016년 8월쯤. 이 자리에서 정씨는 “카지노 수익이 매달 수천만 원” “가족 사업으로 최적이다” “(마카오 카지노장이)삼성보다 재무구조가 더 좋다”는 말로 김씨를 유혹했다고 한다. 김씨는 “마카오 카지노 운영자는 정 총경의 친 누나, 내 돈 5억원을 갚을 사람은 정 총경”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에 정식수사에 착수한 시점에서도 정 총경은 영전(榮轉)을 거듭했다. 전남 지역의 경찰서장으로 갔던 그는 지난해 인사 때 서울경찰청으로 발령 났다. 그를 아는 동료들은 “앞날이 창창한 데 왜…”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선DB

서울 지역의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경찰의 꽃’이라고 불리는 총경은 쉽게 말해서 군대의 ‘스타’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면서 “앞으로 승승장구 하실 분이 뭐가 아쉬워서 오해 받을 일을 벌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정 총경의 ‘마카오 카지노’가 실체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조사를 해보니 카지노를 운영한 기록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정 총경의 마카오 카지노가 ‘신기루’였다는 얘기다. 경찰은 실체가 없는 사업에 투자금 명목으로 수십 억원을 받아 챙겼다고 보고, 정 총경에게 사기 혐의를 적용했다.

경찰 수사가 마무리 된 지난 2월 정 총경은 결국 직위해제됐다. 현재 ‘정 총경 사건’은 검찰이 다루고 있다. 그는 조사과정에서 “고소인들을 만났지만, 사기를 친 것은 아니었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재직시절 사용했던 그의 휴대전화는 현재 ‘착신 불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