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가까이 선방(禪房)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화두(話頭) 하나로 죽고 사는 진짜 수행자들을 만났죠. '요즘 세상에도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습니다."

서울 상도동 보문사 주지 지범(志梵·62) 스님이 최근 '선원(禪院) 일기'(사유수출판사)를 펴냈다. 1978년 출가한 지범 스님은 1980년 전북 부안 월명암 동안거를 시작으로 여름과 겨울이면 전국 선원을 찾아 석 달씩 참선수행하는 안거(安居)를 지냈다. 설악산 백담사, 계룡산 갑사 대자암, 도봉산 천축사, 지리산 진귀암 등 무문관 수행과 누워서 자지 않는 '100일 용맹정진' 수행도 했다. '전설 속에 사라진 해인사 선열당 선원' '낭만과 애환의 선원 지대방' '죽비 놓는 새벽' 등 글에는 선방 풍경과 선승(禪僧) 60여명의 면모가 생생하다. 전설이나 야담 없이 맑고 담백한 수채화 같은 책이다.

보문사는 24시간 문이 열려 있어 인근 주민들의 차량도 주차할 수 있다. 스님은“아침마다‘오늘은 어떤 멋진 손님이 오실까’기대한다”고 말했다.

과거 안거 수행은 고행이었다. 스님의 첫 안거였던 월명암에선 장작이 떨어지면 눈밭을 뒤져 땔나무를 해오고, 변산 마을까지 내려가 쌀과 식재료를 지게에 지고 올라와서는 곧바로 좌복(방석)에 앉았다. 이불도 없이 방석을 배 위에 올려놓고 자던 시절이다. 좌선 시간이 끝나도 수행은 이어진다. 태백산 각화사에선 동암(東庵) 위로 떠오르는 달을 보며 마을 어귀까지 포행(걷기)하고, 전남 곡성 태안사에선 섬진강 강바람 맞으며 화두를 들고 걷고 또 걸었다. 취침시간에도 살며시 일어나 좌선하는 이가 수두룩했다.

평생을 함께 갈 스승과 도반(道伴)을 만난 것은 수행이 주는 축복이다. 선원의 휴식 공간인 지대방에선 '어느 선원에 도인(道人)이 있다' '어느 선원은 기(氣)가 좋아 정진(精進)이 잘된다' 같은 정보가 오간다. 안거가 끝나고 선승들이 스승을 찾아나서 깨달음을 검증받는 '법거량'은 무술인들이 고수를 찾아가 대결하는 '도장(道場) 격파'를 연상케 한다. '깃털처럼 가볍게 앉은 학(鶴) 같은 서옹 스님' '태산 같은 기운이 느껴진 성철 스님' '옛 도인의 향기가 풍긴 서암 스님'을 만난 것도 수행 과정에서다.

하루 10시간 이상 좌선(坐禪)하다 보면 코피 쏟기는 다반사. 그는 "쓰러지고 넘어질 땐 으레 좌복에서 승부를 걸면서 몸을 던졌다"고 했다. 1993년 여름 '이번에 끝내지 않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대자암 무문관에 들어갔다. 5개월간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근 독방 생활. 짓무른 엉덩이살이 방바닥에 눌어붙고 화두는 가물가물해졌을 때, 그는 개미를 봤다. 몇 시간 동안 계속 떨어지면서 기어코 방문 틈으로 먹이를 옮기는 개미를 보면서, 문득 깨달았다. "그때까지 저 혼자 깨쳐서 큰스님 되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중생을 위해 어떻게 살겠다는 원력(願力) 없는 수행은 반쪽이라는 걸 알게 됐죠. 비로소 '문 없는 문'(무문관)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지범 스님은 2000년 은사 정진 스님이 입적한 후 보문사 주지를 맡았지만 동안거 때면 절을 비운다. 올해 동안거도 통도사에서 지냈다. 40년 선원 생활을 하다 보니 변화와 아쉬움도 느낀다. 과거엔 하루 10시간 이하 수행이 드물었다면 요즘은 하루 8~9시간 수행하는 곳이 대부분이고, 여비(旅費) 많이 주고, 시설 좋은 곳이 인기다. 지범 스님은 "과거에 비해 열기가 식은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행에 애쓰는 이들이 있다. 그런 분들이 한국 불교의 희망"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