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국이 모리토모학원(森友學園) 스캔들에 휩싸이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 일본 국회는 예산안 심사를 앞두고 공전을 거듭하고 있고, 모리토모학원을 둘러싼 의혹이 연일 새로 드러나면서 고공행진 하던 아베 내각 지지율은 2주새 40%대에서 30%대로 추락했다. 그에게 도전할 사람이 없는 ‘아베 1강’ 구도가 2012년 집권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 지난해 아사히 보도로 촉발된 ‘사학 스캔들’
모리토모학원을 둘러싼 사학 스캔들은 작년 2월 처음 불거졌다. 모리토모학원이라는 극우 사학재단이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를 명예 교장으로 위촉한 뒤, 9억5600만엔짜리 국유지를 1억3400만엔에 사들인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다. 시가의 8분의 1에 불과한 헐값이었다. 재단 이사장이 총리와 친분을 내세워 무리한 요구를 추진한 전형적인 권력형 특혜 의혹 사건이었다.
이 스캔들로 아베 총리는 지난 해 중순 한때 지지율이 20%대까지 떨어지는 등 궁지에 몰렸으나, 아베 총리가 중의원 해산이라는 승부수를 띄워 자민당이 10월 총선에서 기사회생으로 압승하자 스캔들도 함께 수그러드는 듯했다.
그러나 이 스캔들을 뒷수습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문제가 불거졌다. 사학 스캔들을 둘러싼 의혹이 불거진 시점에 ‘최강 관청’이라 불리는 재무성 직원들이 공문에서 이 문제에 정치권이 관여한 흔적을 310곳 삭제하는 등 공문서를 ‘개찬(改竄·기록물의 일부 구절을 고침)’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2일 “모리토모학원이 국유지를 계약할 때 재무성이 작성한 공문과, 사학 스캔들이 터진 뒤 국회에 제출한 공문이 서로 다르다”고 보도하면서부터다.
엘리트 관료들이 공문서를 조작하면서까지 아베 총리의 스캔들을 덮으려 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여·야당을 막론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 “우리 부부가 관계 있다면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겠다”
“우리 부부가 (사학 스캔들에) 관계가 있다면 총리직도, 국회의원직도 모두 물러나겠다는 점을 확실히 말씀드린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2월 사학 스캔들을 무마하려 국회에 출석해 이 같이 밝혔다. 그러나 그의 이 말은 현 시점에서 오히려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우선, 재무성의 이재국(국고를 관리하는 부서) 직원이 문서 조작을 지시한 정황이 포착됐고, 이 문제에 연루된 긴키현 소속 재무성 직원이 “(도쿄의) 본성(재무성)의 지시로 문서를 고칠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의 메모를 남기고 자살하는 사건까지 벌어지는 등 아베 총리가 마냥 발뺌하며 책임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의 노골적인 지시가 없었더라도 지난해 2월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이 발언이 재무성 관료들의 ‘손타쿠’(忖度·알아서 윗사람이 원하는 대로 행동함)를 촉발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아베 등 정치 권력자가 먼저 지시하지 않아도 공무원이 알아서 권력이 원하는 대로 공문서를 대신 조작해줬다는 것이다.
◇ 아베·아소 모두 발뺌…담당 국장에 책임 돌려
아베 총리는 결국 아사히 신문의 보도 이후 약 열흘만인 지난 12일 “문서조작 문제가 국민 신뢰를 흔드는 사태가 됐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재무성 이재국에 그런 결재서류가 있는지조차 몰랐다”며 삭제 지시 여부와 무관함을 재차 강조하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문서 조작의 핵심 당사자였던 재무성의 수장인 아소 다로 재무상도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문서 조작 사실을 처음 시인했다. 평소 아사히신문을 깎아내리던 아소 재무상은 “가끔은 맞출 때도 있다”며 한 발짝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그 역시 문서 조작과 관련해 담당 국장 책임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손타쿠’ 가능성도 일축했다. 구체적인 조작 원인을 묻는 질문엔 “계속 조사를 진행해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원론적인 대답을 되풀이했다. 정치권에서 아소 부총리의 사퇴 가능성이 제기되자 여러 차례 “사임할 생각은 없다”고 밝히는 중이다.
아베 총리와 아소 부총리 모두 재무성 담당 국장에게 책임을 돌리기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 “누구의 지시로? 왜?” 오는 27일 당시 실무 국장 국회 소환
현 시점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공문서 조작 시점에 재무성 이재국 국장이었던 사가와 노부히사(佐川宣壽·사진) 전 국세청장의 증언이다. 아베 총리와 아소 재무상 모두 공문서 조작의 원인을 그의 탓으로 돌리는 가운데, 그는 오는 27일 일본 국회에 증인으로 소환됐다. 그는 이미 최근 국세청장직을 내놓은 상태다.
당초 아베 총리는 사가와 전 청장을 국회로 소환하면 다음 차례는 아키에 여사가 될 수 있다며 반대 의사를 고수했으나, 여론에 밀려 어쩔 수 없이 그의 국회 출석을 인정했다.
결국 초점은 누구의 지시로 공문서를 고쳤는지, 그리고 어떤 목적에서 공문서를 위조했는지를 두고 사가와 전 청장이 어느 정도까지 사실을 공개할지 여부다.
◇ 아베 총리 당분간 정면 돌파 시도 전망
현 시점에서 아베 총리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버티기’, ‘아소 사퇴’ 등 두 갈래가 거론된다.
그러나 아소 재무상이 사퇴하면 정권의 뿌리가 흔들릴 수 있어 아베는 ‘버티기’쪽으로 기우는 모양새다. 아소가 현시점에서 사퇴하면 사태가 잠잠해지기는커녕 총리 책임론이 더욱 힘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또한 아소가 자민당 내 제2파벌을 이끌고 있기 때문에 그를 내칠 경우 9월 총재 선거 때 3연임이 어려워진다.
문제는 과거와 달리 뾰족한 국면 타개용 카드가 없어 정면 돌파가 쉽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이미 중의원해산 카드를 썼던 터라, 임기를 6개월도 못 채운 상황에서 국면타개용 총선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위기마다 도움을 주던 북한 정세도 미국과 한국이 북한과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어 작년과 정반대의 상황이다. 아베 총리도 북일 정상회담을 모색하기 시작했으나,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