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사람들과 게임하는 상상을 해요. 집에 김정일 사진 있다 (손가락) 접어. 강제로 다이어트한 적 있다 접어. 투표한 적 없다 접어. 제가 다 이기는 거거든요."

맨몸에 마이크 하나를 든 개그맨이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던지는 시답잖은 농담에 좌중엔 쉬지 않고 웃음이 터졌다. 무대에는 등받이가 없는 의자인 원형 스툴 하나와 물 한 잔이 전부. 코미디언이 단출한 무대에 서서 인종·종교·정치·성(性) 등 소재를 가리지 않고 말로 관객을 웃기는 쇼인 '스탠드업 코미디'다.

개그맨 정재형이 지난 15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한 맥줏집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벌이는 모습. 이날 그는 마이크 하나로 좌중을‘들었다 놨다’했다.

공개 코미디 위주였던 우리나라에 스탠드업 코미디가 상륙했다. 지난해 방송인 유병재가 연 공연이 유튜브에서 짧은 영상으로 퍼지며 화제를 모은 것이 시작이었다. 세계 최대 동영상 업체인 넷플릭스는 16일 이 영상에 영어 자막을 입혀 서비스를 시작했다. 넷플릭스는 내달 유병재의 두 번째 코미디쇼를 연다.

지상파 공채 개그맨 출신들도 스탠드업 코미디에 도전하고 있다. SBS 공채 이용주(32)·김민수(27), KBS 공채 정재형(30)은 울산의 한 대학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하던 박철현(26)씨와 함께 이달 초부터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한 맥줏집에서 목요일마다 공연을 열고 있다. 펍(Pub)이나 바(Bar)에서 코미디를 즐기는 미국의 방식을 따라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정기 공연이다.

스탠드업 코미디가 소개된 것이 처음은 아니다. 1980년대 김형곤, 자니윤, 주병진 등이 국내에 스탠드업 코미디를 시도했지만 개그콘서트 같은 콩트식 개그에 밀려 점차 사라져갔다.

"쉽게 던지는 것 같은 이야기 속에도 기승전결이 있네요. 기대하지 않고 왔다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허를 찌르는 개그에 한방 먹었습니다." 지난 15일 대학 동창 14명과 함께 공연장을 찾은 김상학(50)씨가 말했다. 이날 공연을 즐긴 관객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기존 코미디에서 볼 수 없었던 색다른 재미" "기대 이상이었다"는 반응으로 모였다.

전문가들은 스탠드업 코미디가 짜인 각본이 아니라 리얼한 모습에서 웃음을 찾는 최신 코미디 트렌드와 맞닿아 있다고 분석한다. 지난해 콘텐츠진흥원 발간 보고서에 '공개 코미디의 위기, 새로운 코미디 포맷을 기대하며'라는 글을 기고한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짜인 각본에서 웃음을 만드는 공개 코미디의 시대는 갔다"며 "대중은 이제 만들어진 웃음이 아니라 리얼(real)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웃음을 원한다"고 말했다.

미국 LA에서 18년 동안 스탠드업 코미디를 해 왔다는 데니 조(36)씨는 "미국에서는 데이브 샤펠, 조지 칼린, 코넌 오브라이언 등 숱한 스타를 낳으며 스탠드업 코미디가 성장해 왔다"며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에서 벌어질 코미디의 새로운 변화가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