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아이스하키가 적성에 더 맞는 것 같다. 막 부딪치고 도중에 싸우기도 하지 않나. 원래 격투기 쪽으로 갔어야 했는데… 하하하."

신의현의 힘은 가족에게서 나온다. 사상 첫 한국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 신의현(앞줄 가운데)이 18일 모든 경기를 마친 후 가족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신의현 왼쪽이 아내, 뒤가 어머니 이회갑씨다.

싸우고 쟁취하는 게 익숙한 상남자. 한국 동계패럴림픽 사상 첫 금메달의 주인공 신의현(38)은 이런 선수다. 금메달을 딴 17일 평창패럴림픽 크로스컨트리 좌식 부문 7.5㎞ 경기에서 그는 마치 격투기를 하듯 좌식 스키를 내몰았다. 그는 "전쟁터에 나간 느낌으로,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달렸다"고 했다. 외국 코치들이 '왜 이렇게 무리하느냐'며 놀랄 정도로 초반부터 전력 질주를 했다. 신의현은 "자꾸 5초 차이가 난다고 해서 지고 있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5초 앞서 있었다"고 했다. 그는 상이군인 출신 대니얼 크노슨(38·미국)을 5.3초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그의 금메달로 한국은 이번 대회 금 1개, 동 2개로 종합 16위에 올랐다.

사실 그는 매 경기 죽어라 달렸다. 신의현은 크로스컨트리·바이애슬론을 가리지 않고 출전할 수 있는 모든 종목(7경기)에 나섰다. 금메달을 따낸 뒤인 18일 쉴 만도 할 텐데 크로스컨트리 오픈 계주 경기에 나와 2.5㎞를 질주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패럴림픽 동안 총주행 거리는 64.2㎞. 이번 대회에서 그보다 더 많이 설원을 달린 선수는 없다. 카스파르 비르츠 한국 대표팀 감독은 "스스로 7경기 전부 출전하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스키 위에서 보냈는지, 얼마나 많이 훈련했는지 헤아리기 어렵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하루에 60㎞ 이상 갈 때도 있는데, 이 정도는 힘들지 않다"며 웃어넘긴다. 애당초 낯 간지러운 말은 잘 못하는 스타일이다. 금메달 첫 소감이 "밥값 했다. (금메달을 따겠다는) 약속을 지킨 남자가 돼 마음이 좀 놓인다"였다. 그는 앞서 10일 바이애슬론 7.5㎞ 경기에서 5위로 메달을 놓친 뒤 어머니를 만나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지만, 곧 "눈물이 아니다. 땀을 좀 흘린 것"이라고 둘러대기도 했다.

신의현은 2005년 대학 졸업식 전날 교통사고를 당해 두 다리를 절단했다. 이후 4년간 방에 틀어박힌 채 두문불출했다. 그가 다시 사회로 나올 수 있게 된 데는 가족의 힘이 컸다. 어머니 이회갑(68)씨는 사고 후 의식이 없던 아들을 대신해 눈물을 머금고 "다리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을 되뇌면서 절단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고 한다. 이씨는 아들이 금메달을 따내자 "아팠을 때를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일이 벌어졌다. 뛰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대견하다"며 눈물을 쏟았다. 아내 김희선(31)씨는 지게차 운전까지 해가며 밤 농사를 돕고, 아이들 교육까지 챙기는 '내조의 여왕'이다. 경기 중인 한 외국 선수가 넘어지자 이에 놀란 딸 은겸(11)양을 달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빠는 저 선수보다 훨씬 더 많이 넘어졌어. 그래야 저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거야."

신의현은 "많은 장애인에게 힘을 주는 선수가 되고 싶다"며 "무엇보다 가족이 나 때문에 마음고생이 컸다. 앞으로 어머니껜 효자, 아내에겐 가정에 충실한 남편이 되겠다"고 했다.

청각장애 발레리나 '화려한 피날레' - 패럴림피안의 열정을 닮은 화려한 꽃이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을 수놓았다. 18일 열린 평창 동계패럴림픽 폐회식에서 대형 플라워 드레스를 입은 청각장애인 발레리나 고아라(가운데)씨와 무용수들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대회 모든 일정을 마무리한 그는 "지금까지 몸에 안 좋다고 해서 소주 안 마셨는데, 앞으로 며칠 정도는 친구들과 함께 주정뱅이가 되고 싶다"고 했다. 다음 목표는 2020년 도쿄패럴림픽이다. 하계 대회인 만큼 종목은 핸드사이클로 나설 예정이다. 강한 상체 힘으로 사이클을 끌어야 한다는 점에서 좌식 스키와 상통한다. 신의현은 "어릴 적부터 괭이질, 삽질을 하면서 당기는 힘이 좋아졌다"며 "한 포대에 40㎏쯤 되는 밤을 매일 옮겼고, 1㎏짜리 칡 한 뿌리를 뽑으면 어머니가 500원을 주셨다"고 했다. 그가 '허릿심만큼은 자신 있다'고 하는 이유다.

상남자는 또 한번 전투 의욕을 불사른다. "경험 삼아 한 번 출전한 핸드사이클 대회 때 외국 선수들에게 8㎞ 차이로 크게 졌어요. 지금도 생각하니 열이 좀 받네요. 다시 한번 붙어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