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삼월, 봄바람 살랑이는데 워킹맘 마음 왜 이리 무거운지요. 초등학교 1학년 자녀 둔 워킹맘 시름은 더 깊습니다. 학기 초 챙겨줘야 할 준비물은 왜 이리 많은지, 회사 일은 또 왜 이리 몰리는지. 업무 중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학부모 단톡, 꺼버릴 수도 계속 고개 박고 있을 수도 없고. 저희 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김미리(이하 김): 애가 초등학교 고학년인데 담임 선생님이 '학급 밴드'를 만들었어요. 들어가 봤더니 아이 1학년 때 했던 학부모 밴드가 남아 있더라고요. 'L자 파일이 뭐예요? 가림판은 뭐죠?'…. 엄마들끼리 암호 같은 준비물 리스트 해독하려 머리 맞댄 흔적이 고스란히 있었어요. 이럴 때도 있었지, 피식 웃었어요. 요즘은 가정통신문도 잘 안 보는데(웃음).
오누키(이하 오): 저도 신학기 되니 그때 생각이 많이 나요. 1학년 입학할 때 일일이 다 준비해줬는데 고학년 되니 서서히 알아서 하네요. 대견하면서 한편으로 엄마한테 의지 안 하니 섭섭하기도 하고…. 이젠 엄마보단 친구가 좋은 나이가 됐어요.
김: 지금 보면 추억이지만 그땐 고민 참 많았어요. 1학년 첫 달이 골든 타임이다, 첫 학부모 총회엔 무조건 참석해야 한다, 워킹맘 티 절대 내면 안 된다, 바쁘더라도 단톡 답은 꼭 달아라, 무임승차자라 비쳐지면 안 된다…. 선배 워킹맘 조언 듣고 있으면 숨이 턱턱 막혔어요. 학교 행사 있는 날이면 없던 일도 생겨 발 동동 구르고. '알아서' '눈치껏' 해결해야 했어요. 점심 거르고 애 학교 행사 다녀오기도 하고요. 잠든 애 옆에서 운 적이 한두 번 아니었어요.
오: 일본도 마찬가지예요. '초1의 벽(小1の壁)'이란 말이 있어요. 워킹맘들은 취학 전엔 애를 보육원에 저녁 6~7시까지 맡길 수 있는데 초등학교 들어가면 오후 1~2시에 하교를 하니 애 맡길 데 없어 막막한 거예요. PTA(학부모·교사 연합회)라 불리는 일본 학부모회도 장난 아니거든요. 반강제적으로 가입하게 돼 있는데 워킹맘들에겐 여간 부담되는 게 아니에요. 행사도 늘 평일에 하고. 결국 고민하다가 이때 관두는 엄마들이 엄청 많아요.
김: 한국에서도 '초1'이 '워킹맘의 무덤'이라고 하죠. 젖먹이 떼고 일터로 나올 때 1차 위기가 오고, 애 초등학교 입학 때 2차 위기 온다는데 두 번째 문턱에서 관두는 경우가 많아요. 지난해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워킹맘 1만5800여명이 개학을 전후로 일을 관뒀다는 기사도 있어요. 최근 정부에서 '초등입학기 돌봄공백해소대책'세워 초등학교 1학년 부모가 애들 데려다주고 오전 10시에 출근하는 안 등을 내놨다는데 주변에서 이 제도 활용하는 사람 못 봤어요.
오: 일본에선 엄마들과 관계 맺기가 중요한 이슈예요. 한국처럼 전업맘·워킹맘 갈등도 많고요. '마마도모(ママ友)'란 말이 있어요. 일본어로 엄마를 뜻하는 '마마(ママ)'와 친구를 뜻하는 '도모(友)'를 합친 말이에요. 아이 통해 친해진 학부모 친구를 일컬어요. 말은 '친구'라지만 아무래도 조심스럽고 약간은 불편한 관계랄까?
김: 한국에서도 '맘친구'란 표현이 생겼더라고요. 사실 요즘 세상에 그냥 친구 사귀기도 싶지 않은데 아이 친구 엄마랑 친구 되기 쉽지는 않죠. 미묘한 관계죠. 그런데 가끔 진짜 인생 친구를 만나기도 해요. 저도 두세 명 있어요. 전업맘도 있고요.
오: 저희 친정엄마는 저 초등학교 6학년 때 알게 된 마마도모하고 요즘도 친해요. 저도 아이 통해 알게 된 마마도모들이 저 귀국할 날을 기다리고 있어요. 든든한 육아 동지들이죠. 워킹맘으로 살기가 팍팍하지만은 않아요.
김: 첫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입학한 워킹맘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지레 겁먹지 말라고. 아이도 1학년이 처음이지만, 엄마도 '엄마 1학년'은 처음이잖아요. 서투른 게 당연해요. 아이도, 엄마도 그렇게 성장하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