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화의 중심 사상이 실학, 북학, 개화사상이었다는 통설은 허구입니다. 그 세 가지는 소수 지식인층의 생각일 뿐이었고, 근대화를 이룰 능력도 지니지 않았습니다."

황태연(61·사진)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기존 역사학계에 도전장을 내미는 새 연구서를 출간했다. 1000여 쪽 분량의 '한국 근대화의 정치 사상'(청계)은 그가 지난해 잇달아 냈던 '갑오왜란과 아관망명' '백성의 나라 대한제국' '갑진왜란과 국민전쟁'의 3부작을 이은 정치철학서다. 모두 근대화의 주류 세력이 개화파가 아니라 고종을 중심으로 자주 노선을 걸었던 세력이라는 시각을 담고 있다.

황 교수는 "실학은 근대적 사상이 아니라, 오히려 보수 반동의 반(反)근대 사상"이라고 주장했다. "실학자들이 '화폐와 상업을 없애야 한다'고 했던 것은 신분제를 초기 조선으로 되돌리려는 시도였습니다." 그가 보기에 실학의 일파인 북학은 오히려 한술 더 뜬다. "중국(청)을 본받으려 하다 보니 아예 민족 문화를 말살하려는 단계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그들을 계승한 개화파 중 많은 이가 친일 성향을 띠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진정한 근대화 사상은 존재했을까. 그는 "대중의 지지를 받으며 실질적으로 근대화를 수행했던 사상이 네 가지 있었다"고 말한다. 조선을 새로운 문명의 중심으로 삼고자 했던 '조선중화론', 임금을 주변국 군주와 동등한 지존으로 높이려는 '신(新)존왕주의', 백성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참정권을 행사하는 '민국(民國) 사상', 우리 전통을 근본으로 삼아 외국 문물을 우리에 맞게 받아들이는 '구본신참론(舊本新參論)'. 이 사상들이 대한제국의 창건을 가능케 했고 3·1운동의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이 4대 사상 조류는 현재의 정치사회적 발전과도 무관하지 않은 사상의 동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