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포르노 배우 스테파니 클리포드와의 성추문 공방이 점입가경으로 치닫으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치 생명에 경고등이 켜졌다.

뉴욕타임스(NYT)는 12일(현지 시각) 클리포드의 변호사 마이클 아베나티를 인용, “클리포드가 ‘입막음’ 대가로 받은 13만달러를 트럼프 대통령의 변호사인 마이클 코헨에게 돌려주겠다고 제안했다”며 “이렇게 되면 트럼프와 클리포드, 코헨이 맺은 합의는 전부 무효가 된다”고 보도했다.

미 주간지 ‘인터치’는 2011년 있었던 스테파니 클리포드와의 인터뷰를 통해 클리포드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이의 혼외 성관계 의혹을 보도했다.

앞서 클리포드는 CBS의 인기 시사프로그램인 ‘60분’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과의 성관계 의혹 전모를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인터뷰의 방영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이 방송 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이와 관련, “‘입막음 합의서’에 따라 클리포드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사적 관계에 대해 어떤 발언도 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해 1월 트럼프 대통령과 클리포드의 성추문을 폭로하면서 “2016년 10월 트럼프 대통령의 변호사는 성관계 사실에 대해 침묵한다는 조건으로 클리포드에게 13만달러를 줬다”고 보도했다.

당초 “돈을 준 사실이 없다”던 코헨은 추가 보도가 이어지면서 “내 돈으로 준 것이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과는 무관하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에 클리포드도 지난 6일 로스앤젤레스 연방법원에 무효 소송을 제기하면서 맞불을 놨다. 합의서에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이 빠졌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입막음용으로 받은 돈까지 돌려주겠다는 클리포드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모든 것을 밝힐 기세다. 그의 변호사인 아베나티는 이날 코헨에 서한을 보내 “13만달러를 반환하면 클리포드는 그와 트럼프 대통령의 과거 관계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관련된 영상·사진·문자메시지를 보복이나 법적 책임의 두려움 없이 사용하고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마이클 코헨 변호사.

트럼프 대통령과 코헨은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졌다. 클리포드의 제안을 거절하면 클리포드를 계속해서 입막음하려는 행위로 보일 수 있고, 받아들이면 불륜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코헨은 뉴욕주 변호사 윤리규정에 따라 합의금을 고객인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 그동안 모르쇠로 일관했던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썩 즐거운 일이 아닌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합의금이 전달되면 ‘코먼코즈’ 등 미국 시민단체가 제기한 ‘선거자금법 위반’ 의혹도 명분이 생긴다. 코먼코즈는 지난달 22일 13만달러 합의금이 “2016년 대선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사용됐다”고 주장하며 이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미 법무부와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에 보냈다.

◇ ‘클리포드 합의금’ 선거법 위반 가능성…CNN “뮬러 특검, 직접 수사 나설 수도”

CNN 등 미 현지 언론은 이번 성추문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생명이 끝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코헨이 ‘러시아 스캔들’과 연루된 상황에서 클리포드와의 법정 공방을 통해 어떤 추가 사실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는 현재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진영과 러시아의 내통 의혹을 수사 중이다.

특검이 코헨에 주목하는 이유는 2가지다. 대선 기간 트럼프 당시 대선 후보의 사업에 러시아가 관여했는지 여부와 우크라이나의 대러 제재 해제안을 둘러싼 트럼프 진영의 개입 의혹이다. WSJ 등은 지난해 8월 코헨이 미 의회에 제출한 자료를 인용, “코헨은 2016년 1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대변인인 드미트리 페스코브에게 이메일을 보내 ‘중단된 트럼프타워 사업을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NYT는 코헨이 1월 말 우크라이나 의원인 안드리 아르테멘코와 러시아 출신 미국인 사업가 펠리스 세이터와 만나 러시아 제재 해제 방안을 전달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제안서에는 제재의 빌미가 됐던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50년 또는 100년간 임대하는 방안을 우크라이나 국민투표에 부치는 계획 등이 포함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로드 로젠스타인 미 법무차관이 2018년 2월 16일 법무부 기자회견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젠스타인 법무차관은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를 지휘한다.

특검이 직접 코헨과 클리포드의 수사에 나설 수도 있다. 미 법무부에 따르면 뮬러 특검은 러시아 스캔들 관련 “수사 과정에서 발생하거나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사안”을 수사할 권한이 있다. 마이클 젤딘 전 연방검사는 “클리포드가 비록 러시아인은 아니지만 특검은 그를 수사할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다”며 “검사들에게는 코헨이 클리포드에게 합의금을 주는 과정에서 연방선거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돈으로 클리포드의 침묵을 산 행위는 일종의 ‘선거자금 기부’로 해석될 수 있다. 미 선거법에 따르면 개인이 대선 진영에 기부할 수 있는 금액의 한도는 2700달러다. 코헨이 클리포드에게 준 13만달러는 이 한도를 훌쩍 뛰어넘는 액수다. 심지어 이 합의금은 FEC에 신고되지도 않았다. 다시 말해 특검은 코헨을 FEC 사취 혐의로 기소할 수 있는 것이다. 특검은 이미 지난해 폴 매너포트 전 트럼프 대선진영 선거대책본부장을 이 같은 혐의로 기소한 바 있다. 미 선거법상 사취 행위는 최대 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는 중죄에 속한다.

코헨을 사취 혐의로 기소한 뒤 다른 범죄 행위를 찾는 방법도 있다. 젤딘 전 검사는 “특검은 한가지 혐의로 인물을 조사하다가 그에게서 또다른 혐의를 발견하면 기존의 혐의로 우선 그 인물을 기소할 수 있다”며 “뮬러 특검이 ‘첫번째 기소를 지렛대로 이용해 코헨의 다른 혐의를 조사하겠다’고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선거법 위반의 경우 굳이 특검이 아닌 FEC나 미 법무부가 나설 수도 있다. 하지만 FEC의 경우 현재 위원 1명이 공석인 총 4명으로, 이중 3명이 집권당인 공화당 소속이다. 법무부 역시 트럼프 진영의 좌장이었던 제프 세션스 미 법무장관이 사퇴하지 않는 이상 수사를 기대할 수 없다.

◇ 성추문 논란 커지는데…멜라니아, 몇 주째 침묵

멜라니아 트럼프 미국 영부인이 2018년 2월 5일 오하이오주 방문을 위해 백악관을 떠나고 있다.

한편 WSJ의 첫 보도 이후 유독 조용한 곳이 있다. 영부인의 집무실이 있는 이스트윙이다. CNN은 7일 “멜라니아 여사의 대변인인 스테파니 그리샴에게 성추문 관련 입장 표명을 요구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며 “멜라니아 여사는 몇주째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그의 의미심장한 행보를 두고 갖가지 추측이 쏟아지고 있다. 멜라니아 여사는 앞서 WSJ의 보도 직후 트럼프 대통령과의 다보스 포럼 방문 일정을 돌연 취소했다. 당시 그리샴 대변인은 “멜라니아 여사의 일정 등을 이유로 불참이 최종 결정됐다”고 밝혔다.

멜라니아 여사가 관례를 깨고 새해 국정연설장인 하원 의사당에 트럼프 대통령과 따로 도착하고 입장한 점도 불화설의 징후로 해석되고 있다. 미국 대통령 부부는 전통적으로 국정연설장에 동반 입장한다. 지난해 첫 의회연설 땐 멜라니아 여사도 트럼프 대통령과 나란히 입장했다.

일각에서는 멜라니아 여사의 ‘조용한 항거’설이 제기된다. 그가 국정연설장에 입은 흰색 바지 정장이 한 예다. 영미권에서 흰 옷은 1910년 여성 참정권 운동을 상징한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등 민주당 의원 일부가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의 첫 의회연설에서 흰 옷을 입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 NBC는 이들의 단체 행동에 “취임 전부터 여성비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트럼프 대통령의 여성관에 항의하는 의도가 담겼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