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에 종사하는 여성 3명 중 2명은 "성희롱과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외모평가·음담패설 등 언어로 당한 성희롱이 가장 많았고 9명 중 1명꼴로 원치 않는 성관계를 요구받았다고 답했다.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여성영화인모임이 12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발표한 '영화계 성평등 환경 조성을 위한 성폭력·성희롱 실태조사' 내용이다. 영화계에 성폭력·성희롱이 만연하다는 그간 지적이 실태조사로 확인된 셈이다.
이날 영진위와 여성영화인모임은 작년 6월부터 9월까지 영화인 74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심층 면접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자 중 여성은 467명(62.3%)이었다. 조사 대상에는 배우·연출자·작가·촬영스태프 등 영화 관련 여러 직군이 포함됐다.
전체 응답자의 46.1%는 성희롱·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여성 응답자 61.5%, 남성 응답자는 17.2%였다. 여성 응답자 가운데 11.3%는 "원치 않는 성관계를 요구받은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여성 22.3%는 '원하지 않는 신체접촉을 당하거나 신체접촉을 하도록 강요받았다'고 대답했다. '사적 만남이나 데이트를 강요당했다'는 비율도 27.6%에 달했다. 가해자는 상급자(48.7%)가 가장 많았고 동료(24.1%), 교수 및 강사(9.9%) 순이었다. 성폭력 피해는 술자리나 회식 장소(44.3%)에서 가장 많이 일어났다. 다음은 외부 미팅 등 일 관련 장소(19.4%), 촬영현장(16.8%), 회의 장소(15.4%)였다.
여성들은 이런 피해를 영화 입문 단계(31.0%)에서 가장 많이 입었다고 대답했다. 주로 배우(50.4%)·작가(41.2%)들이 영화 입문 단계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답했다. 정규직 고용자가 영화 입문 단계에서 피해를 입은 경우는 10.6%였다. 배우들이 특히 성폭력에 취약했다. 연기를 빌미로 합의하지 않은 노출을 요구받는 식이다. 조사자 중 한 명은 "감독이 갑자기 예정에 없던 장면을 만들어 '조금 더 섹시하게 찍고 싶지 않으냐'고 말하는 식"이라며 "'죽어도 안 한다'고 하면 '그냥 찍고 넘어가자'는 식으로 반응했다"고 대답했다.
피해자 다수(46.3%)는 그러나 "문제라고 느꼈지만 참았다"고 대답했다. 그 자리에서 잘못을 지적하거나(12.9%), 소리를 지르는 등 도움을 요청한 경우(0.7%)는 적었다. 또 이들 절반 이상(53.5%)은 '친구, 동료 등에게 이야기하고 공론화하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 경찰에 신고한 경우는 0.3%였다. 한국영화성평등센터 공동센터장을 맡은 심재명 명필름 대표와 임순례 감독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국영화계 성평등 시스템 마련에 힘쓰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