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철강·알루미늄에 고율 추가 관세를 물리기로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결정을 가장 결정적으로 뒷받침한 인물은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과 피터 나바로(68)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실장 두 사람으로 꼽힌다. 특히 나바로 실장은 백악관의 경제 수장으로, 자유무역의 수호자 소리를 들은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겸 경제 보좌관의 강력한 방어망을 뚫고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부과 결정을 내리도록 만든 인물이다.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경제학 교수 출신의 나바로는 어떻게 게리 콘 경제 보좌관과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등 절대 다수인 '관세 반대' 진영의 저지를 뚫을 수 있었을까.
잡지 '배너티 페어'의 지난해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2016년 사위 재러드 쿠슈너에게 중국의 기회주의적 무역 관행에 대한 연구를 부탁했다. 쿠슈너가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 찾은 책이 바로 캘리포니아대(어바인 소재) 교수 나바로가 쓴 '중국에 의한 죽음(Death by China)'이었다.
쿠슈너의 주선으로 대선 캠프에 합류한 나바로는 트럼프와 '보호무역'에 대한 생각이 통했다. 트럼프는 백악관에 '무역제조정책실'을 신설해 그에게 맡기고, 나바로를 자신의 '이너(inner) 서클'에 포함했다.
그러나 그의 극단적 보호무역주의 태도는 백악관의 다른 자유무역주의 참모들과 잘 맞지 않았다. 작년 여름쯤 그는 콘 경제 보좌관에게 보고하는 지위로 떨어졌다. 사무실도 백악관 웨스트윙(West Wing)의 대통령 참모들 공간과 떨어진 별도 행정동(棟)에 마련됐다. 나바로는 지휘 계통상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수도 없었다. 그는 콘이 무역에 대한 자기 견해를 계속 빼놓고 보고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웨스트윙의 주례(週例) 백악관 무역 참모 회의에서 "수십 년 방치된 제조업 도시들을 살리겠다는 대통령의 공약과 비전을 잊었느냐"고 맞섰지만, 다수 의견에 묻혔다.
마른 체구에 장거리 달리기를 즐기는 나바로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사무실 건물도 아닌 웨스트윙을 자주 기웃거렸다. 어떻게든 트럼프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려는 것이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양복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이어폰을 꽂은 나바로가 웨스트윙의 대통령 집무실 밖에서 서성대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고 7일 전했다. 그러다가 대통령 집무실 길목의 '문고리 권력'인 롭 포터(40) 선임비서에게 걸려 야단맞기도 했다.
2월 초 그에게 '대통령 직보(直報)' 기회가 왔다. 포터가 이전 배우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실이 드러나 사임하고, 이 일로 웨스트윙의 군기반장이었던 존 켈리 비서실장의 권위에도 금이 갔다. '문고리 권력'이 사라지자 나바로는 지난달 28일 저녁 트럼프를 몰래 만나 "제조업 부활 대선 공약을 강력하게 미국민에게 전해야 한다"고 했고, 트럼프는 동의했다. 콘 경제 보좌관과 다른 장관들이 트럼프의 마음을 돌이키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트럼프는 지난 6일 "아주 기쁘게(loving way)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고, 수시간 뒤 콘은 사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