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서 살아가는 거룩한 부처님들, 술집에서 웃음 파는 엄숙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1986년 부처님오신날 조계종 종정 성철(性徹·1912~1993) 스님이 발표한 법어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교도소, 공장, 논밭 그리고 술집까지, 모든 이를 '부처님'으로 부르고 그들의 '생신'이라고 했다.
한문이라곤 하나도 없는 '파격 법문'의 뿌리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성철스님 임제록 평석'(장경각)이다. 성철 스님이 1974~75년 하안거·동안거 때 해인사에서 강의한 '임제록' 녹음테이프를 40여 년 만에 풀었다.
'임제록'은 당나라 말 임제(臨濟) 선사의 법어를 모은 책. 임제 스님은 '걸림 없이 깨달은 이[無位眞人]' '어디서든 주인공이 되면 그곳이 모두 참된 곳[隨處作主 立處皆眞]' 등 빛나는 어록을 남기며 '선(禪)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선어록의 왕'으로 불리고, 성철 스님도 '귀서(貴書)'로 여긴 책이다. 바로 이 임제록 강의 중 '수처작주' 대목에서 '술집 부처님'이 등장한다. "어디서든 주인이 되니 아무리 더러운 똥구덩이, 아무리 거친 가시밭길, 술집이든 홍등가든 어느 곳에 있더라도 그곳이 바로 연화대요 극락세계입니다." 물론 임제록 원문엔 없는 비유다.
임제록 강의는 성철 스님 인생에서 '쉬운 법문'의 시작점이다. 그는 강의 첫머리에 "쉽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평소 '법문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스님 귀에도 들어갔던 모양이다. 작심한 성철 스님은 친절해졌다. '임제'라는 이름 뜻부터 인도와 중국 불교사, 선교(禪敎)의 차이를 차근히 설명한다. 스승과 제자가 때리고 맞으며 고함 지르는 기행(奇行), 진리를 묻는 제자에게 '마른 똥 막대기'라는 둥 알쏭달쏭 대답을 내놓는 배경도 알려준다.
일반인 입장에선 '수좌오계(首座五戒)'가 흥미로울 듯하다. 성철 스님이 평소 선승(禪僧)들에게 '이야기하지 마라' '잠 많이 자지 마라' '책 보지 마라' '음식 적게 먹어라' '돌아다니지 마라'고 한 다섯 가지 규율이다. 이 강의 녹취를 보면 '책 보지 마라'는 일종의 극약 처방이다. "과거 불시에 점검해보면 강원(講院) 선방(禪房)에서 유행가 책, 연애소설까지 온갖 것이 다 나왔어요." 경전을 읽어도 화두 놓칠 판에 소설까지 뒤적이는 후학들에게 아예 책 자체를 금지시킨 것.
소상하고 친절하게 임제록을 설명하지만 스님은 끝내 '말[言]'을 경계한다. "나는 말을 따라오지 않는 사람을 바라고 말을 하는 것이지, 말을 따라와 말 밑에서 고꾸라져 죽는 사람은 절대로 바라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