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10년 안에 미국인 세계 바둑 챔피언이 출현할 수 있어요. 알파고 효과 등 환경이 바뀌면서 바둑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가 엄청 높아졌습니다." 중견 프로기사 김명완(40) 8단이 10년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최근 한국에 돌아왔다. 세계대회 8강(2005년 삼성화재배)에도 올랐던 그는 프로기사 제도 도입 등 미국 바둑 현대화의 주역으로 활동해왔다.

"앤드루 오쿤 전미바둑협회(AGA) 회장과 의기투합해 여러 일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미국 바둑계에도 보비 피셔(체스 영웅)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 속에 2012년 첫 프로 선발대회를 열었지요." 첫해 앤디 류, 쉬간셍 등 2명으로 출발해 현재 프로기사 수는 6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몽백합배 본선에서 라이언 리 초단이 중국 거목 천야오예를 꺾고 16강에 오를 정도로 미국 프로의 수준은 높아졌다.

미국 생활 10년 만에 귀국한 김명완 8단. 그는“미국에선 교정 잔디밭에서 교수와 학생이 바둑 대국을 펼치는 모습이 흔한 광경이 됐다”고 전했다.

2013년엔 바둑지도사 제도도 만들었다. 각급 학교, 도서관, 교도소 등을 방문해 바둑을 보급하는 것이 지도사의 역할인데 이수자 수가 120명을 넘어섰다. "방문 요청이 몰려드는 등 반응이 매우 좋습니다. 한국기원서 지원한 교재와 교구(敎具)도 큰 도움이 됐고요." 직접 가르친 제자도 40여 명에 이른다. 4인조 록그룹 밴 헤일런의 멤버 데이비드 리 로스도 그의 제자다.

김 8단은 유튜브를 통한 프로바둑 해설이란 신천지 개척자이기도 하다. 2015년 세계대회 결승 때는 '동시 접속자 7만명'이란 전설을 만들었다. 이듬해 이세돌 대 알파고전 해설은 200개국서 시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김 8단은 "인터넷 보급과 알파고 현상이 겹쳐 바둑계 국경이 없어졌다. 바둑의 동양 지배가 곧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우리가 오히려 미국 바둑계로부터 배울 것이 더 많아요. 미국인들은 한국처럼 승부에만 매달리지 않고 바둑을 철저히 교육의 수단으로 활용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우형(愚形)'이란 한마디로 금기시하는 것도 그들은 돌의 모양에 따라 'toilet(화장실)', 'b2 bomber(폭격기)' 등의 감각적 이름을 붙여 연상 효과를 유도한다. '돌파'의 미국식 용어는 'broken dam(부서진 댐)'이다.

"어린이 대회 때 공정성을 최고 가치에 놓는 것도 그런 사고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고작 20명이 출전한 대회에 심판이 서너 명씩 배치돼 급수를 확인하고, 계가를 도와준다. 그는 아이비리그 등 미국 유명 대학들이 지원자들의 바둑 경력에 높은 가산점을 주는 것도 바둑 특유의 교육적 효과를 인정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간이 인공지능에 정복당한 상황에서 바둑은 이제 스포츠나 게임이 아닌 클래식(classic)으로 대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아름답고, 교훈을 주고, 현실 아닌 다른 세상을 보고, 오랜 역사를 지닌 바둑이야말로 고전(古典)의 전형이란 것. 김명완은 지난 10년 미국 바둑계를 바꿔놓고, 자기 자신은 오히려 미국식 바둑관에 흠뻑 빠진 모습으로 되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