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는 남편 친구, 항소심 재판 중
1심 재판부 "아내 증언 믿기 어렵다"
법조계 "유서, 불리한 정황 맞지만…
유·무죄 가릴 증거는 이미 다 나와"
성폭행 피해를 당한 30대 부부가 “죽어서도 복수하겠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생을 달리했다. 가해자인 남편 친구는 1심에서 성폭행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고,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 부부가 유서에서 밝힌 내용이 C씨의 항소심 재판에서 ‘성폭행 혐의’를 밝혀줄 증거가 될 수 있을까.
A(34)씨와 남편 B(38)씨는 지난 3일 전북 무주군의 한 캠핑장 캠핑카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는 유서에서 아내 A씨를 성폭행한 C(38)씨에 대한 저주와 원망을 퍼부었다.
"친구의 아내를 탐하려고 모사를 꾸민 비열함과 추악함, '무언의 살인자' '가정 파탄자'..."
"당신(C씨)의 간사한 세 치 혀 때문에 지난 1년간 우리 두 사람은 악몽에 시달렸고, 사는 것이 지옥 불구덩이였다."
"지금처럼 추잡하고 비굴하고 구차하게 그렇게 끝까지 살아남아야… 남은 평생을 우리가 보낸 일 년 지옥보다 천 배 만 배 더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야 한다."
"죽어서라도 끝까지 복수하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A씨 부부가 남긴 유서 내용을 볼 때 C씨에게 죄를 묻는데 결정적인 역할은 못할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유서는 재판에서 ‘증거 능력(증거가 될만한 자격)’은 인정받아 증거로 채택 될 수는 있지만,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증거가 될 지, 말 지를 판단하는 ‘증명력’은 유서 내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부부의 유서의 내용은 피고인에게 불리한 정황이지만, 이미 1심 재판을 거치며 강간 혐의의 유·무죄를 판단할 증거가 거의 다 나온 상태이기 때문에 결정적 역할은 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고등법원 한 판사는 "유서 자체는 작성 당사자의 의사인만큼 가해자가 해당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을 경우, 양형요소로 고려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죄의 유무죄 등은 사건 발생 당시에 일어난 증거들로 판단하는 것이고, 혐의를 입증할 확실한 증거가 제출되지 않는 이상 유서 자체가 유무죄 판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1심 재판부가 C씨의 성폭행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이유는 이렇다.
부부와 C씨의 악연은 지난해 4월 시작됐다. 남편 B씨가 베트남으로 출장을 간 사이 남편 친구 C씨가 “남편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다”며 A씨에게 접근했다. 충남 논산지역 조직폭력배인 C씨는 A씨를 꾀어 충남 계룡시의 한 무인호텔에 데려간 뒤 성폭행했다. A씨는 사건 직후 경찰에 신고했고, C씨는 수사과정에서 A씨에 대한 성폭행을 비롯해 폭력 등 여러가지 범죄 혐의가 드러나 구속 기소됐다.
A씨는 "4월10일 밤 C씨를 만나 폭행과 협박을 당한 뒤 며칠 동안 협박을 당하다가 14일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한 반면, C씨는 "4월10일부터 15일까지 매일 만나다시피 하며 남녀 관계로 발전했다"고 결백을 주장했다.
재판부는 “C씨가 부부사이를 이간질하고 A씨의 뺨을 때리고, A씨 남편을 해치려고 한다는 등 협박을 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A씨는 남편이 출장을 간 4월10일부터 14일까지 닷새 동안 매일 C씨를 만나면서도 감금이나 구속을 당한 적이 없고, 남편과 계속 연락하면서도 C씨의 협 사실을 알리지 않거나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A씨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무인호텔의 CCTV 화면에도 사건 당일 A씨가 맥주로 추정되는 물건이 담긴 봉투를 들고 들어가는 장면, 이후 호텔에서 나와서도 아무렇지 않게 피고인과 차에 타는 장면이 찍혀 있는 점 등을 무죄의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C씨는 A씨로부터 듣지 않고 꾸며냈다고 보기 어려운 그녀의 민감한 개인사와 고민들을 구체적으로 진술한다"며 "이런 대화는 어느 정도 친분을 쌓고 신뢰를 가지게 된 상대방과 나눌 수 있는 것이지 가족에게 위해를 가하겠다고 협박을 하는 범인에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라고 했다.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호텔방 안에서의 증거는 A씨의 증언 뿐이었다. A씨는 “C씨가 쇄골 부분(급소)을 왼쪽 손으로 강하게 누른 채 오른손으로 바지를 벗겼다” 등 의사에 반하는 성폭행 피해에 대해 증언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C씨의 성폭행 혐의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이 사건과 별개로 기소된 폭행 혐의 등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