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박탈 안방보험 대주주설 태자당 인사 심장마비...글로벌 500대기업 창업자 조사설
부채위기⋅ 정경유착설 HNA 10만명 구조조정...시진핑 주석 종신집권 자본과 권력 통제 강화

중국에서 창업자가 경영권을 박탈당한 안방보험. 중국 당국은 1년 기한으로 지난 2월 경영권을 접수했으며 지배구조 개편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경영관리를 1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시진핑(習近平)이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경고, 어떤 중국의 억만장자도 무너질 수 있다”(블룸버그) “중국의 안방(安邦)보험 접수, 다음은 어디가 될까”⋅“시진핑의 중국, 성공이 갈수록 위험해지고 있다”(월스트리트저널)

중국이 5일 베이징에서 개막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국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종신집권의 길을 열어줄 개헌이 통과될 것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최근까지 급성장해온 완다 HNA 안방보험 등 대기업들이 위기에 직면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유명 기업인도 한순간에 어려움에 빠질 수 있는 불확실한 사업환경이 조명을 받고 있다.

중국 재계에 1일 알려진 3가지 사건이 중국의 사업환경을 재조명하게 한다는 지적이다. 중국 당국이 자본금 1위, 자산 3위인 안방보험의 경영권을 1년 간 접수한다고 발표한 지 닷새가 지난 2월 28일 안방의 대주주로 알려졌던 태자당(太子黨⋅당 원로 자제) 천샤오루(陳小魯)가 급사를 한 것으로 이날 확인돼 위챗 등 중국 SNS에서 갖가지 설(說)이 돌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인 중국 에너지기업 CEFS의 예젠밍 회장이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차이신이 보도했다.

러시아 대형 석유기업 로즈네프트 지분을 90억달러에 인수할 예정이던 중국의 화신(華信)에너지(CEFC)는 이날 관련 주식과 채권이 급락했다. 홍콩에 상장된 상하이 다성(上海大生)농업금융과기의 경우 일시적으로 76%가 빠지기도 했다. 창업자 예젠밍(叶简明) 회장이 유관 부문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중국 잡지 차이신(財新)이 이날 보도하면서다.

또 하이난(海南)항공으로 시작해 글로벌 500대 기업으로 성장한 HNA(하이항·海航)그룹이 10만여명의 직원을 해고한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이날 보도했다. 지난해 5월 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뱅크의 최대주주에 올라섰던 HNA는 당국의 부채 축소 압박에 최근 도이체뱅크 지분을 줄이고 해외 자산 매각에 속도를 내왔다.

부동산 재벌로 세 차례 중국 1위 부호(후룬연구원 기준)에 올랐던 왕젠린(王健林) 완다(萬達) 회장은 올 1월 “해외부채를 모두 갚기로 했다”며 “해외 자산중 절반 가량을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간판 기업들의 위기에 대해 △과도한 부채에 의존한 고성장 모델이 한계를 드러낸 경제 리스크로는 보는 시각과 △반부패 운동과 권력투쟁의 희생양이라는 정치리스크로 보는 시각이 맞선다. 최근 문제되고 있는 이들 기업들이 대부분 ‘실세와의 관시(關係)’가 부각된 탓에 이같은 엇갈린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

◇과도부채 의존 성장모델의 한계 vs 반부패⋅권력투쟁의 희생양

우샤오후이 안방보험 창업자, 왕젠린 완다 회장, 천펑 HNA 회장은 과도한 부채로 해외에서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펼친 탓에 지난해 중국 당국의 금융리스크 억제 대상으로 지목됐다.

창업자 우샤오후이(吳小暉) 회장이 불법 자금모집 혐의 등으로 기소되고 경영권을 박탈당한 안방보험은 중국 당국의 금융리스크 억제와 권력투쟁 탓이라는 복합요인을 부각시키는 대표적인 사례다.

WSJ는 안방보험의 투자기능이 있는 유니버셜상품을 2014년부터 2016년까지 470억달러어치 팔았다며 이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해외의 고위험자산에 투자하면서 리스크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안방보험은 2014년 499억위안 증자과정에서 순환출자와 허위 증자가 이뤄졌다”(차이신)는 의혹도 받아왔다.

중국 금융계의 소식통은 “순환출자를 했기 때문에 정작 보험금 지급능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며 “당국으로선 3500만명으로 추정되는 안방 고객에 피해가 갈 경우 미칠 사회불안을 걱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10대 혁명원로인 천이(陳毅) 전 부총리 아들 천샤오루가 심장마비사를 하면서 중국 SNS에는 안방보험 사태로 스테레스를 받은 게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글이 돌았다. 2015년 본인이 부인했지만 안방보험의 지분 51%를 가진 실질적인 대주주라는 설이 돌았던 그는 보스(博时)기금관리유한공사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었다.

WSJ는 72세인 그의 사망에 의심을 살만한 건 없지만 중국 공산당의 불투명한 속성상 태자당과 관련된 사건을 정치적인 렌즈를 통해 보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불투명성이 음모론을 키운다는 얘기다. 특히 우샤오후이는 덩샤오핑(鄧小平) 외손녀 사위(이혼설도 있음)로 혼맥을 이용해 권력 실세들과 관시를 맺어왔다는 설이 계속 돌았었다.

이날 예젠밍 CEFC 회장이 중국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한 차이신을 인용한 WSJ는 안방보험의 경영권 접수에 이은 사건이라며 시 주석의 중국 하에서는 부(富)와 국제적인 커넥션도 엘리트들에게 보호막을 쳐줄 수 없음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관시가 좋은 재벌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시가 강화한 권력으로 금융리스크에 철퇴를 가하면서 나타난 사례들이라는 얘기다.

중국 컨설팅업체 트리븀차이나의 공동창업자 트레이 맥아버는 “예젠밍에 대한 조사는 중국의 정치가 아웃사이더 뿐 아니라 인사이더들에게도 불투명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예젠밍과 우샤오후이는 모두 중국에 있는 힘있는 기업이이나 정부 당국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관시가 탄탄하다는 것을 설득시켜왔다”고 말했다. CEFC는 성명을 통해 예 회장에 대한 보도가 근거가 없고 무책임하다고 주장했다고 WSJ는 전했다.

하지만 CEFC의 자금지원을 받은 연구조직의 대표가 지난해 11월 차드 뇌물수수 혐의로 미국에서 체포된 적이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과도한 부채로 해외 M&A에 공격적에 나섰다는 지적을 받아온 완다와 HNA 역시 ‘실세 뒷배경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왕젠린 회장은 과거 시 주석 누나 부부가 한때 주주였던 게 사실이었다고 털어놓았고, HNA는 미국에 도피한 부동산 재벌인 궈원구이(郭文貴) 정취안(政泉)홀딩스 회장으로부터 시 주석 집권 1기 반부패 사령탕이던 왕치산(王岐山) 전 기율위원회 서기 가문과 유착됐다는 공격을 받아왔다. HNA가 정리하는 10만명의 직원은 HNA가 매각하는 계열사 직원도 포함됐다.

특히 안방보험과 HNA는 불투명한 지배구조 탓에 이 같은 의혹을 쉽게 떨쳐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중국 부호 조사기관 후룬은 안방의 지분구조가 파악이 안돼 창업자 우 회장에 대한 재산을 알 수 없다고 밝혔다.

HNA도 권력 유착설 뿐 아니라 부채 위기설까지 함께 휘말리고 있다. HNA는 최근 채권단에 올해 1분기 최소 150억 위안의 유동성 부족에 직면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HNA가 1분기에 상환해야 하는 부채는 약 650억 위안에 달한다.

◇푸싱⋅지리車 해외 M&A 가속 배경있나

중국 당국이 해외 투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가운데 궈광창 푸싱 회장(왼쪽)과 리수푸 지리자동차 회장은 최근 공격적인 해외 M&A로 주목받고 있다.

상하이에 있는 투자회사인 푸싱(复星)은 완다 안방 HNA 등과 함께 지난해 당국에 의해 은행 신규 대출 금지 대상으로 찍혔던 기업이다. 중국 당국이 2016년말 해외 투자 억제 대상으로 정한 호텔 부동산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등에 과도하게 투자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푸싱은 지난 2월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패션 명품으로 꼽히는 랑방의 최대주주가 됐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1889년 설립된 랑방에 푸싱은 1억유로를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전했다. 푸싱도 지난해 300억위안 규모의 자산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당국이 지목한 다른 기업들과는 달리 해외 자산 인수를 병행하는 과감한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푸싱의 창업자 궈광창(郭廣昌)회장이 인터뷰에서 “우리의 해외투자는 중국 정부와 현지 정부의 비준을 받고, 매우 투명하게 진행한다”며 “더 많은 해외 거래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요 투자 대상으로 보건의료 교육 패션 관광 업종을 꼽았다.

2015년말 당국의 조사로 일시 실종됐던 궈광창 회장은 근거지가 상하이라는 이유로 당시 “상하이방 포위작전의 신호탄, 장쩌민(江澤民)에 대한 압력”(니혼게이자이신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최근 중국발(發) 해외 M&A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은 지리(吉利)자동차다. 지난 2월 벤츠의 모기업인 다임러의 지분 9.69%를 확보했다. 2010년 볼보 승용차를 인수한 지리차는 작년에만 볼보 상용차 등 해외서 4개 자동차 회사를 사들였다. 지리가 시장에서 다임러 지분을 사들이는 데 쓴 자금만 90억달러로 지리차의 6년간 순이익을 합친 것보다 많다. 때문에 지리차의 인수자금 출처가 미스테리로 떠올랐다.

지리차의 창업자 리수푸(李書福) 회장은 중국의 자동차 전문 미디어 환구(環球)자동차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임러 지분 인수자금과 관련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했다고만 밝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지리차 뒤에 정부 자금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지리차가 주장하는 해외 자금 조달은 HNA의 해외 자금 조달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은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회사들인데 한쪽은 규제를 받고, 한쪽은 지지를 받은 건 왜 일까.

베이징의 소식통은 “시진핑 정부는 금융시스템에서만 돈이 돌면서 경제가 과도하게 금융화하는 것을 막고 제조업 같은 실물경제에 자금이 흘러가도록 하는데 주력하고 있다”며 “해외투자 억제 대상으로 꼽은 분야에 제조업 관련된 분야가 하나도 없는 게 이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중국에서 금융에 추운 겨울이 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전인대에서 확정할 당정 기구개편에서 은행 보험 증권 감독기구를 통합하는 방안이 의제로 올라갈 것으로 전해지는 것도 금융사들이 감독기구의 사각지대를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지난달 28일 사흘 일정을 끝낸 중국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19기 3중전회)는 공보에서 “‘당정 기구 개혁 심화 방안’을 확정하고 이 중 일부 내용을 13기 전인대 1차 전체회의 심의를 받도록 법적 절차를 밟기로 했다”고 밝혔다. 3개 감독기구를 통합하는 안을 마련한 뒤 이번에는 우선 은행과 보험 감독기구만 합치는 식으로 순차적으로 기구개편에 나설 것임을 시사한다는 게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리수푸 회장과 시 주석과의 인연을 부각시키는 시각도 있다. 시 주석이 저장(浙江)성 당서기 시절 처음으로 시찰한 민영기업이 지리자동차다. 저장성 유일의 자동차 기업이기도 했다. 당시 지리자동차 연구원을 찾은 자리에서 시 주석은 “지리 같은 기업을 돕지 않으면 우리가 어떤 기업을 도와야하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리 회장은 5일 개막하는 13기 전인대 대표로 선출됐다. 처음으로 전인대 대표에 오른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5일 개막하는 13기 전인대 1차 전체회의에서 종신집권의 길을 여는 개헌안을 통과시키면 자본과 권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블룸버그통신은 시 주석이 권력을 잡은 이후 중국 대기업들의 부채에 의존한 확장에 제동을 걸고 반부패 운동을 밀어부쳤다며 시 주석이 종신집권을 하게 되면 돈과 권력에 대한 통제를 더욱 키울 수 있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맥아버는 억만장자에 대한 조사에 대해 “시 주석이 당을 이용해 부자가 되지 말고 당을 위해 부자가 되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WSJ는 중국의 황제들이 권력을 잡을 때 바닥에 많은 시신을 남기곤 했다며 시 주석의 (황제)등극도 많이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시 주석에 종신집권의 길을 열 개헌에 투표를 할 전인대 대표에는 중국 유명 기업인도 적지 않다. 중국 최대 SNS업체 텐센트 창업자이자 중국 최고 부호인 마화텅(馬化騰) 회장과 중국 최대 가전유통업체 쑤닝의 장진둥(張近東) 회장,스마트폰업체 샤오미(小米)의 레이쥔(雷军)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레이 회장은 올 하반기 홍콩과 중국 증시에 샤오미를 동시 상장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레이 회장은 상장 이후 중국 최고 부호가 될 것이라고 중국언론들은 관측한다. 이들이 시 황제를 만들 수 있는 찬성표를 던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