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혁 문화1부 기자

"구체적인 사실 인정 없는, 알맹이 없는 사과문이다."

성추문이 불거진 지 이틀 만인 2월 28일 만화가 박재동이 "용서를 구하고 자숙의 시간을 갖겠다"는 사과문을 냈다. 페이스북에 "당시 기억을 찾으려 노력했다" "알게 모르게 여성들에게 가했던 고통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썼으나 구체적인 추행은 적시하지 않았다.

그러자 성추행 피해 주장 여성 만화가의 남편이 장문의 댓글을 남겼다. "가해 사실이 기억났다는 것인지, 기억을 찾는 게 어려워 피해 진술을 인정하겠다는 것인지, 여성들에게 어떤 고통을 가했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었다. 특히 사과문 말미의 "저는 '미투' 운동을 지지합니다. 우리 시대가 나아가야 할 당면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정의로운 문장은 비난을 자초했다. "사과문인지 '미투' 지지글인지 모르겠다"는 원성이 쏟아졌다.

배우 오달수의 성추문 사과문도 도마에 올랐다. "기억이 솔직히 선명하지 않았다" "어떻게 바로 모를 수 있느냐는 질타가 두려웠지만 솔직한 제 상태였다" 같은 문장 탓이다.

미투 운동은 사법 절차가 아니다. 순기능이 있으나, 일방 폭로로 공분을 일으켜 대상을 공격한다는 점에서 여론 재판에 가깝다. 그러므로 사실이 아니면 반박해야 한다. 기억이 전혀 안 난다면 사과를 하지 않는 게 옳다. 기억이 안 나는데 뭘 사과하고 반성하나. "기억은 안 나지만 미안하다"는 태도는 사과가 아니라 변명이고, 위기를 모면하려는 수작으로 봐야 한다. 연극연출가 윤호진이 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사과드린다" 같은 표면적 사과문도 마찬가지다. 향후 있을지 모를 법적 공방을 대비한 포석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온다.

미국 언어학자 에드윈 바티스텔라는 저서 '공개 사과의 기술'에 "사람은 자신을 변호하며 사과하려 할 때 딜레마에 빠진다"고 썼다. "자기 변호는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고, 이 때문에 본래의 사과를 확장하거나 바꿔야 할 수도 있다. 지속적인 수정은 본래의 사과를 진실하지 않거나 불완전한 것으로 만든다… 잘못을 진실하게 궁구한 사과라면 적절한 해명 요소(가해 내용, 시정 약속 등)가 자연스레 담길 수 있지만, 자기 합리화에 급급한 변명이라면 효과가 없을 것이다."

석고대죄(席藁待罪)는 거적을 깔고 벌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거적 대신 두툼한 방석을 깔고 있는데 사과가 제대로 될 리 없다. 성추문 사과 기자회견 리허설이 발각돼 망신살 뻗친 연극연출가 이윤택이 극적인 예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