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내퍼 주한미국 대사대리는 28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북핵 '시간 벌기용' 미·북 대화는 원하지 않는다"는 말로 최근의 남북 대화와 향후 미·북 대화에 대한 '미국의 속내'를 드러냈다. "미국은 대화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문재인 대통령)는 한국 정부의 요청에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내퍼 대사대리는 "북한이 비핵화로 이어질 의미 있고 진실한 논의에 참여할 의지를 보인다면 미국은 그런 논의에 나설 뜻이 있다"며 "북한은 미국이 대화에 열려 있다는 것도 알고 어떻게 우리에게 연락할 수 있는지도 안다"고 말했다. 북한이 '뉴욕 채널' 등 미·북 직접 소통 창구를 놔두고 한국 정부를 통해 메시지를 흘리며 '제재 완화'를 모색하는 데 대한 경고로 풀이된다.

◇대화의 '문턱 낮추기'에 부정적

내퍼 대사대리는 이날 "('최대의 압박'이라는) 미국의 정책은 변하지 않는다"면서도 "미국이 북한 사람들에게 악감정(ill will)을 가진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비핵화 대화를 하겠다는 (북한의) 결정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상황을 개선할 길을 찾을 수 있기 바란다"고 했다. 대북 제재·압박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아서 계속되고 있는 것이며, 비핵화 대화로 나온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암시다.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미국과의 대화 용의를 밝혔을 때, 청와대는 "전제 조건은 없었다"고 강조했었다. 내퍼의 '비핵화 강조'는 이런 '전제 없는 미·북 대화론'에 대한 우회적 거절로도 보인다.

마크 내퍼(왼쪽) 주한 미국대사대리가 28일 서울 정동의 주한미국대사관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추가 연기 가능성은 없다"는 내퍼의 말에도 뼈가 있다. 27일(현지 시각) 미국의 의회전문지 '더 힐'은 미국 상·하원 군사위 대표단이 지난주 방한했을 때 한·미 훈련을 계속 연기하는 방안이 논의됐다고 보도했다. 강경화 외교장관, 송영무 국방장관 등을 만났던 제임스 인호프 공화당 상원의원의 선임 보좌관이 "그것(한·미 훈련 추가 연기)에 대한 대화가 있었다" "한국은 미국이 (대북 대화의) 문턱을 낮추기를 바란다"고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청와대는 이 보도를 부인했지만, 우리 정부의 태도에 대한 의심은 미국 일각에 남아 있는 셈이다.

◇"북한은 미국에 연락하는 법 안다"

내퍼 대사대리는 이날 "북한은 우리(미국)에게 어떻게 연락을 취할 수 있는지 안다"는 말을 두 차례 했다. 그는 "실무 차원의 대화는 금지되지 않았다"며 "북한이 우리와 비핵화에 대해 대화하기를 진지하게 원한다면 어떻게 우리에게 연락할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정말로 미국과 비핵화를 위한 대화를 원한다면 굳이 한국 정부를 통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지난 2월 27일 "우리가 (미·북 대화를 위해) 중매 역할을 하는 입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내퍼는 "한국 정부의 역할을 잊을 수는 없다"면서도 비핵화의 중요성을 북한에 설명해 줄 수 있다는 점 등 '보조 역할'만을 언급했다.

한·미 간에 이런 미묘한 입장 차이가 노출되면서 정부 안팎에서는 "미국과의 소통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긴급 현안 대정부 질문에 출석해 "평양보다 워싱턴이 (특사·정상회담 면에서) 선행돼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 중인 강경화 외교장관은 이날 "미국과는 '기회가 닿고 시간이 나면' 틸러슨 장관과 얘기를 하려 한다"며 "조만간 성사되도록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북한에 '직접 나에게 말하라'는 사인을 보내고 있는데 '기회가 닿으면' 미국과 만나겠다는 것은 우선순위를 모르는 처사 아니냐"고 말했다.

한편 백악관은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커티스 닐슨 국토안보부 장관을 평창패럴림픽 개회식에 참석할 미국 대통령 대표단 단장으로 임명했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