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정진석(87·사진) 추기경이 26일 서울대 입학 68년 만에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정 추기경은 이날 열린 서울대 학위수여식에 직접 참석하지는 않았다. 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정 추기경을 대신해 참석한 허영엽 서울대교구 홍보국장에게 명예 졸업장을 전달했다. 허 신부가 대독한 축사를 통해 정 추기경은 '나눔과 섬김의 삶'을 당부했다.

어린 시절부터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으며 발명가를 꿈꿨던 정 추기경은 1950년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6·25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한 학기도 채우지 못하고 학업을 중단한 뒤 통역 장교로 참전했다가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면서 사제의 길을 걷게 됐다.

정 추기경은 이날, 1950년 6월 24일 토요일 오후 수업을 마치고 태릉의 서울대 공대를 나서던 장면을 묘사하는 것으로 축사를 시작했다. 시내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서울대생들과 휴가 나가는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들떠서 큰 소리로 웃고 떠들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그것이 서울대와의 마지막 인연이었다는 것. "이튿날 터진 6·25전쟁으로 그날 기차에 같이 탔던 많은 젊은이들은 조국을 위해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근 70년 전의 일이지만 마치 어제와 같이 생생합니다."

정 추기경은 어려운 상황에서 사회로 진출하는 졸업생들에게 "아무리 힘든 고난과 역경이 닥치더라도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며 "희망은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피어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며,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어 가야 한다"며 "가치 있는 존재는 부귀와 명성을 가진 자가 아니라 나눔과 섬김의 삶을 실천하는 자"라고 강조했다. 정 추기경은 또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이기심"이라며 "행복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