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시인이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풍문을 바로잡고 그의 문학을 새로 조명하고 싶다."
29세에 삶을 마감한 시인의 29주기를 앞두고, 소설가 김태연(58·본명 김승구)씨가 동갑내기 친구 기형도(1960~1989)를 기리는 자전적 소설 '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를 출간했다. 제목은 기형도의 대표작 '빈 집' 첫 문장에서 차용했다. 매년 기일을 챙겼으나 기형도의 묘소는 점차 빈집이 돼 갔다. "2016년에는 묘소에 나까지 딱 2명 왔다. 이렇게 잊혀선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생겼다. 그해 기형도문학관 건립을 위한 유품 수집에 나섰고, 글을 써 남기기로 결심했다."
연세대 신입생 시절, 교내 돌층계에서 술을 퍼붓다 정신 차려보니 연세문학회 동아리방이었다. "다칠 것 같아" 그를 그리로 옮겨온 게 기형도였다. 정법대 기형도와 공과대 김승구의 문학적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소설 장치를 활용하긴 했으나 사실의 기록에 가깝다"고 했다. 주고받은 엽서 등을 바탕으로 김씨 본명뿐 아니라 서울 인사동 술집 '평화만들기'나 종로3가 '파고다 극장', 안양 석수동 '희망다방' 등 실제 명사를 등장시켰다. "어울린 장소나 나눴던 단어를 메모해 뒀고, 그게 소설적 바탕이 됐다."
문제의 '파고다 극장'에 기형도를 처음 데려간 것도 김씨였다. 동성애자들의 아지트로 유명했던 곳이다. "궁금해하기에 호기롭게 끌고 갔는데 화장실에서 동성애자들의 성행위를 보고 둘 다 크게 충격받았다." 평소 고혈압을 앓던 스물아홉의 기형도는 3월 7일 새벽, 그 극장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급성뇌졸중이었다. "24시간 문 여는 곳이라 곧잘 약속을 잡곤 했다. 전날 오후 6시에도 통화했다. 다음 날 거기서 만나기로 했는데, 생전 마지막 통화였다. 스스로도 자신의 요절을 예감했던 것 같다."
김씨가 새로 조명하려는 기형도는 철학도로서의 기형도다. "플라톤부터 비트겐슈타인·칸트 같은 철학자를 두고 자주 토론했다. 1983년 발표한 시 '소리1'은 니체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이런 배경을 알고 나면 그의 시가 새롭게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