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피리어드 종료 3분16초를 남기고 독일의 역전골이 터졌다. 2―3. 패배 위기에 빠진 OAR(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강릉 하키센터 관중석에 자리 잡은 러시아 응원단에서도 탄식이 흘렀다.
당초 25일 남자 아이스하키 결승은 OAR이 완승할 것으로 점쳐졌다. 세계 랭킹 2위인 OAR은 예선 B조 1위(2승1패)를 했다. 노르웨이와의 8강전은 6대1, 체코와의 4강전은 3대0으로 가볍게 이겼다. 반면 독일(세계 7위)은 예선 C조를 1승2패로 힘겹게 통과했다. 스웨덴과의 4강전, 캐나다와의 준결승에선 모두 연장 대결 끝에 4대3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러시아는 이번 올림픽에 자국 국기를 유니폼에 달지 못하고 OAR이라는 이름으로 출전했다. 국가가 주도해 선수들에게 금지 약물을 복용하게 했다는 증거가 드러나면서 IOC(국제올림픽위원회)의 징계를 받은 것이다. OAR은 이날 빨간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 올림픽에서 여섯 번 우승을 차지하며 '레드 머신'으로 불렸던 구소련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결승전은 예상과 달리 초반부터 접전 양상으로 흘러갔다. OAR이 1피리어드 종료 0.5초 전 선제골을 넣은 후 동점과 역전을 주고받았다. OAR은 2―1로 앞서던 3피리어드 후반 내리 두 골을 내줬다. 2―3으로 끌려가던 종료 2분여 전엔 더 큰 위기를 맞았다. OAR 선수 한 명이 독일 선수에게 반칙을 해 2분간 퇴장당하면서 수적으로 열세에 놓인 것이다. OAR은 골리(골키퍼)를 빼고 공격수를 투입하는 극단적인 전술을 펼쳤다.
절실함이 통했다. 종료 55.5초 전 독일 문전에서 혼전 중 퍽이 흐르자 OAR의 니키타 구세프가 번개같이 슛을 날려 3―3 동점을 만들었다. OAR의 기세는 서든 데스 방식인 연장에도 이어졌다. 9분여 만에 독일 선수 한 명이 퇴장을 당했다. OAR의 키릴 카프리조프가 구세프의 패스를 받아 강하게 날린 샷이 독일 골 네트를 흔들었다. 4대3 역전승이었다.
OAR은 소련 해체 후 독립국가연합으로 출전한 1992 알베르빌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이후 26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동메달을 끝으로 입상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풀었다. 자국 리그(KHL)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속 선수 15명, CSKA 모스크바 선수 7명으로 진용을 꾸렸다. NHL(북미 아이스하키리그) 953경기에 출전한 베테랑 파벨 다축과 816경기 출장 경력의 일리아 코발축은 젊은 팀에 경험을 보탰다. 다축은 "독일에 끌려갔을 때 심장이 거의 멈추는 듯했지만, 우리는 그것을 이겨냈다. 그게 바로 우리 팀의 색깔"이라고 했다. 대회 MVP에 뽑힌 코발축도 "다섯 살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간절했던 꿈을 이뤘다"며 "조국 러시아를 위해서도 너무도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시상식에선 러시아 국기 대신 오륜기가 올라갔고, 러시아 국가 대신 올림픽 찬가가 울려 퍼졌다. 이 역시 IOC가 도핑 파문을 일으킨 러시아를 징계하면서 내려진 조치였다. 그런데 관중석 절반 이상을 채운 러시아 팬들이 국가를 부르기 시작하자 시상대에 선 OAR 선수들도 국가를 따라 불렀다. 선수들이 경기 전 금메달을 따면 국가를 부르기로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IOC가 규정을 위반한 OAR에 제재를 내릴 가능성도 있다.
OAR은 평창에서 올림픽 최고 인기 종목인 남자 아이스하키와 여자 피겨(알리나 자기토바) 우승을 차지하는 등 금 2, 은 6, 동 9개를 따내며 종합 13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