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 시각) 교내 총기 사고에 대한 해법으로 교사들을 훈련해 무장하고, 이들에게 보너스를 주자고 제안했다. 전날 플로리다주 고교 총격 사건의 생존자와 유족들과 만나 한 “총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교사가 있었다면 이번 참사를 빨리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발언을 구체화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각 주 당국자들을 소집해 '학교 안전 간담회'를 열고 "교사의 20%가 총을 소지하고 있으면 총격범들은 학교 안으로 들어올 수 없을 것"이라며 관련 입법을 촉구했다. 이밖에 총기 구매자 신원조회 강화 총기 구매 가능연령 상향 조정 반자동소총을 대량 살상이 가능한 자동소총으로 개조하는 도구인 '범프 스탁' 판매 중단 등 3대 총기 규제 강화책 추진 계획도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2월 22일(현지 시각)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각 주 당국자들을 소집해 ‘학교 안전 간담회’를 열고 교내 총기 사고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규제 강화 방침에 대해 “전미총기협회(NRA)도 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도 NRA의 지도자들을 “훌륭한 사람들이자, 미국의 위대한 애국자들”이라고 부르며 단체를 옹호하기도 했다. NRA는 미국 최대 총기 로비단체다.

다만 총격 대비 훈련 등 자기방어대책에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지난 14일 총격 사건이 발생한 마조리 스톤맨 더글라스의 경우 평소 ‘코드 레드(총격범이 학교에 침입한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시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관련, “차라리 학교를 무장하는 것이 낫다”며 총기금지구역(gun-free zone)을 없애자고 주장했다. 학교가 무장한 상태여야 총기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트럼프 ‘무장 교사에 보너스’ 제안

앞서 CNN 등 미 언론 다수는 이번 플로리다 참사가 총기 규제 강화의 전환점으로 작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미 수정헌법 제2조에 따라 총기 소지 권리가 기본권으로 규정돼 있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정치가 후원금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과거 총기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벌어진 총기 규제 논쟁은 늘 총기 소지 옹호론자들의 승리로 끝이 났다. 옹호 세력의 대부분이 전미총기협회(NRA)의 후원을 받는 공화당과 이들의 지지자였던 게 컸다. 그동안 많은 미국인들이 규제 강화를 요구했음에도 의회와 백악관 모두 소극적으로 대처했던 이유다. NRA는 2016년 대선 당시 3000만달러를 트럼프 캠프에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 NRA의 후원금 내역을 보도하며 현재 미국 상·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이 이를 독식했다고 전했다.

웨인 라피에르 NRA 최고경영자(CEO)가 2018년 2월 22일 메릴랜드주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서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제안을 두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는 반응이 나오는 배경이다. ‘학내 무장화’는 NRA가 지지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웨인 라피에르 NRA 최고 경영자(CEO)는 이날 메릴랜드주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연설에서 “학교는 총기 사용이 금지된 공간이고, 그렇다 보니 정신 나간 사람들의 타깃이 되고 있다”며 “(교사들을) 위해 무료로 총기 사용 훈련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 대표는 이날 성명을 내고 “NRA가 트럼프 대통령을 흔드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지만, 생각보다 너무 빨라 놀랐다”고 비꼬았다. 슈머 대표는 앞서 발표한 다른 성명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또 다시 한심하고 현실감 없는 제안을 하며 총을 제외한 모든 것을 탓했다”고 비난했다.

교사들의 반발도 이어졌다. 미 최대 교원단체인 전국교육협회(NEA)는 이날 “학교 내 총기 반입은 총기 범죄로부터 학생과 교사들을 보호하지 못한다”며 “무고한 이들을 살해하려는 자들의 손에 총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른 교원단체인 미국교사연맹(AFT)은 교사 무장을 “군비 경쟁”이라고 부르며 “학교를 군사 시설로 만드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 “총기 규제 강화” 들끓는 여론…NRA, 대기업 후원·파트너십 잃기도

일각에서는 총기 규제 강화 실현이 전보다 희망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총기 구매자 신원조회 체계를 개선하고 총기 구매 가능연령을 올리는 데 지지 입장을 피력한 한편, 일부 공화당 의원은 범프 스탁 판매 중단에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2018년 2월 21일 백악관 앞에서 총기 규제 강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 전역의 청소년들도 이례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19일에는 학생 수백명이 백악관 앞에 모여 NRA의 해체와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시청과 일리노이주 시카고 도심에서도 학생들이 행진이 이어졌다. 플로리다주 고교 총격 사건의 생존자들을 비롯한 인근 학교 학생들은 연일 주 의회 의사당과 캠퍼스에서 총기 범죄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각계 유명 인사들은 기부를 통해 동참했다. 배우 조지 클루니와 부인 아말 클루니는 다음달 말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우리 생명을 위한 행진’에 50만달러를 기부하기로 했다. 클루니 부부의 기부가 알려진 후에는 제프리 캐천버그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CEO, 스타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등의 기부 행렬이 이어졌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부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청소년들의 총기 규제 강화 요구를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NRA에 대한 비판 여론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대형 민영은행인 ‘퍼스트 내셔널 뱅크 오브 오마하’와 미국 내 최대 렌터카 업체 ‘엔터프라이즈 홀딩스’는 이날 NRA 후원 계약과 협력 관계를 철회했다. 앞서 텍사스주 댈러스 시장은 NRA의 총회 장소를 다른 곳으로 알아보라고 통보했다. 다음달 NRA의 연례총회는 댈러스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퀴니피악 대학이 최근 실시한 전국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 중 66%가 현행보다 강력한 총기 규제를 요구했다. 총기 규제 관련 여론조사를 실시한 2008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반면 이에 반대하는 유권자는 31%에 그쳤다. 팀 맬로이 퀴니피악대 여론조사 책임자는 “최근 2년간 여론이 급변했다”며 “미국인들이 총기 난사에 무심하다고 느꼈다면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