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한국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이 23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 참석을 위해 방남하는 북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단장으로 한 고위급 대표단은 안된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여야가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 참석 문제를 두고 정면 충돌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김 부위원장을 ‘천안함 폭침의 배후’로 지목하면서 그의 방남을 수용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민주당은 “천안함 폭침에 김 부위원장이 연루된 것은 확인이 안됐다”고 했다. 또 야당의 김영철 방남 반대 목소리를 ‘정치 공세’라며 중단을 촉구했다. 여야가 김영철 방남으로 충돌하면서 민생 법안을 처리할 국회 상임위원회도 곳곳에서 파행을 거듭했다.

◇ “김영철은 戰犯... 한국 땅 밟는 즉시 체포해야”

한국당 의원들은 23일 오전 청와대를 방문해 ‘천안함 폭침 주범 김영철 방한 철회 촉구 결의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정찰총국 책임자 김영철은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목함지뢰 도발 등 천인공노할 만행을 주도한 원흉”이라며 “김영철의 방한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장제원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이후 별도 논평을 내고 “김영철은 우리의 소중한 아들 46명의 생명을 불시의 어뢰 기습으로 앗아간 불구대천의 철천지 원수”라며 “김정은이 극악무도한 김영철을 대표단장으로 선택한 것 자체가 대한민국을 우롱하고 무력통일의 의지를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 대변인은 또 “이에 대해 ‘올림픽 성공을 위해 대승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청와대의 북한 두둔은 듣고 있기가 역겹다”며 “폭침과 포격과 지뢰로 국민을 집단 살인한 김영철을 환영하고 청와대로 들이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임을 포기하는 반역행위이며 한국 방문을 허가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배신한 이적행위”라고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한국당은 김영남 방남 문제를 따지기 위해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정보위원회 소집을 요구한 상태고, 홍준표 대표는 천안함 46용사 추모비를 찾아 참배하기로 했다.

홍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점입가경이라는 말이 있다. 김영철의 방한을 두고 생각난 말”이라며 “김정은의 남남갈등과 한미 이간책동에 부화뇌동하는 친북 주사파 정권의 최종목표는 결국은 연방제 통일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평창 이후가 더 걱정이다. 안보는 김정은의 손에 넘어가고 경제는 미국의 손에 넘어가게 생겼으니 이 나라를 앞으로 어찌 할까”라며 “나라의 안보주권은 김정은에게 바치고 경제주권은 트럼프에게 넘어가면 이 나라는 어디로 가냐”고 했다.

바른미래당도 김 부위원장의 방남을 강력히 비판했다. 박주선 공동대표와 유승민 공동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부위원장을 ‘천안함 폭침의 주범’이라고 규정하면서 방남 철회를 촉구했다.

유 공동대표는 “김영철 방한에 분명히 반대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영철을 만나는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정부는 김영철 방한 허용 방침을 당장 철회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김영철은 천안함 폭침의 주범으로 국군 통수권자가 해군 46명을 살해한 전범을 만나 대화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이는 대한민국과 우리 군, 국민을 능멸하고 모욕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유 공동대표는 김영철 방남 반대를 위한 저항운동까지 언급하며 강경 대응을 제안했다.

박 공동대표 역시 “김영철을 천안함 폭침의 주범으로 국민은 판단하고 있다. 지금 김영철에 대한 국민의 분노 표출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며 “정부는 ‘왜 하필 김영철이냐’고 북한에 대표단 교체를 요구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영철이 북한 대표로 오면 평화올림픽 의미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고 오히려 갈등과 혼란의 올림픽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는 북한에 김영철 파견을 재고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상임위 곳곳에서 여야 대치… 법사위·사개특위 등 파행

이날 열린 상임위도 김영철 방남 문제를 둘러싼 여야 대치로 파행을 거듭했다. 법제사법위원회는 이날 오전 11시 전체회의를 열고 ‘천안함 폭침 사건 주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김영철에 대한 수사 촉구안’을 상정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날 전체회의가 여야 합의 없이 진행됐다며 불참했다. 민주당 법사위 간사인 금태섭 의원은 “여야 합의가 되지 않은 회의는 응할 수 없다”며 신상발언을 하고 곧바로 퇴장했다.

오전 10시부터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의 참석 여부를 놓고 여야가 설전을 벌이다 정회했다. 한국당 소속 김성태 운영위원장은 “임 비서실장은 오늘 오후 4시 국회 운영위(전체회의)에 출석해주실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한다”며 개의 10여분 만에 정회했다.

그는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요청에 따라 전날 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운영위 전체회의 출석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임 실장이 회의를 주재 중이라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며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위원장이 정회를 선언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이게 뭐하는 짓이냐"며 집단 반발했다.
민주당 간사인 박홍근 의원은 "(임 실장의 운영위 참석 요구를) 납득·수용할 수 없는 사항"이라고 했다.

같은 시간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개의 시작 5분만에 파행했다. 이날 사개특위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한국당 간사인 장제원 의원과 바른미래당 간사인 권은희 의원이 정성호 위원장(민주당)에게 거센 항의를 하고 퇴장했다. 한국당은 장 의원을 제외한 의원 전원이 회의에 불참했다.

한국당은 김 부위원장 방문과 관련한 청와대 항의 방문 일정 때문에 회의를 오후로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정 위원장은 여야 교섭단체 간사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의사일정 연기 요청이라는 이유로 이를 거절하고 회의를 예정대로 진행했다. 그러자 장 의원은 회의 시작과 동시에 “민주당이 사개특위 시작 첫날부터 단독으로 강행하는 건 협치를 파괴하는 독선적인 운영”이라며 신상발언을 한 뒤 곧바로 퇴장했다.

◇ 민주당 “김영철 천안함 폭침 연루 증거 없어”

이에 맞서 민주당은 한국당의 공세 중단을 촉구했다. 추미애 대표는 이날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방카 미국 백악관 선임고문과 김영철 부위원장이 함께 폐막식에 참석한다는 점은 한반도의 평화 분위기 조성에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며 “그럼에도 전 세계에서 오직 한국당만이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한을 두고 꼬투리를 잡으며, 올림픽에 훼방 노릇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추 대표는 “김 부위원장은 지난 2014년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의 북한측 수석대표로 참석했다”며 “한국당의 전신이었던 당시 새누리당은 김영철이 천안함 주범이었다고 지적하자, 그같은 지적이 남북대화의 노력을 방해한다는 공식 논평을 낸 바 있다”고 말했다. 또 “지난 2010년 천안함 폭침 합동조사에서도 김영철이 연루된 사실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게 국방부의 발표였다”고 말했다.

우원식 원내대표도 “지난 2014년 회담 당사자로서 한국당이 높이 평가하던 김영철과 지금 거품을 물고 막고있는 김영철은 어떤 차이가 있나”며 “(한국당은) 민생입법을 거부하기 위한 핑계로 국회를 또다시 정쟁의 장으로 만들려는 자세를 접고 국회로 빨리 돌아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평화당도 민주당을 거들고 나섰다. 조배숙 민평당 대표는 2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 모두발언에서 “평화보다 위대한 정치는 없다”며 “우려는 있지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평화는 지켜져야 한다”고 했다.

조 대표는 이어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의 ‘평화 알레르기'가 재발하고 있다”며 “천안함 폭침의 배후라는 이유로 반발하고 있지만, 정작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군사회담 파트너로 접촉한 사실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