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검찰과 경찰이 '고래 고기'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 경찰이 압수한 고래 고기를 검찰이 업자들에게 돌려주자 동물 보호 단체가 검사를 경찰에 고발했다. 그래도 검찰이 꿈쩍 않자 이 단체는 청와대로 달려갔다. '청와대가 진상을 밝혀달라' 청원을 내고, 민정수석에게 편지도 썼다. 비슷한 청원 20여 건이 꼬리를 물었다.

▶청와대 인터넷 청원이 22일 오후 12만3900건을 넘어섰다. 하루 770여 건꼴이다. 이 중 15건은 20만명 넘게 참여했다. 20만명을 넘기면 답변하겠다는 약속에 따라 청와대는 이 중 8건에 답변했다.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국회의원 급여 최저 시급으로' 등 7건은 답변 대기 중이다. 가히 '국민 신문고 시대'다.

▶국민 청원은 공무원의 부당한 행위로 피해 본 국민이 국가기관에 직접 호소해 구제받는 제도다. 헌법에도 규정돼 있다. 입법(立法) 관련 의견도 낼 수 있어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측면도 있다. 인터넷·소셜미디어 시대가 되면서 정부의 여론 수렴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미국 백악관도 '위 더 피플'이라는 인터넷 청원 제도를 통해 국민과 거리를 좁히고 있다.

▶그동안 청원 제도가 얼마나 형식적으로 운영됐기에 이러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갈수록 정치 편향적 집단 공격, 인민재판식 여론 몰이가 판치는 현상은 우려할 만하다.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선수들의 국가대표 박탈 청원에 나흘 새 57만명이 몰렸다. 해외 언론에까지 나올 정도다. 야당 의원을 올림픽 조직위원에서 파면하라는 청원, 삼성 사건 재판장 파면 촉구에도 수십만 명이 참여했다. 아이돌 가수 팬클럽이 몰려와 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청원 참여자 수 뻥튀기 시비도 그치지 않는다. 미국과 달리 한 사람이 중복해 의사 표시 할 수 있는 시스템 허점 탓이다.

▶국민 목소리를 듣는 창구에 청와대 비서들이 툭하면 끼어드는 것도 문제다. 민정수석은 '낙태죄 답변'에 나섰다가 천주교계의 반발을 샀다. 뉴미디어 비서관은 삼성 재판장 파면 청원에 '국민 뜻을 경청해야'라고 했다. 비서관이 재판에 왈가왈부할 권한을 누가 주었나. 그러니 너도나도 모든 문제를 청와대로 끌고 가 결판내겠다는 '기승전청(起承轉靑)' 풍조가 생겨난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그제 "답변하기 부적절한 청원이 많아 고민"이라고 했다. 고민할 일이 아니다. 청와대 비서들은 빠지고, 애초 취지에 어긋나는 주장은 걸러낼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