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 풀 키맨은 美 로펌의 '김석한 변호사'
소송 전 청와대서 대통령 접견도 여러 번
金, 미국 영주권자… 강제소환 쉽지 않아
검찰 "조사 안해도 혐의 입증 차질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

이명박(77) 전 대통령과 삼성그룹의 '뇌물 통로'로 지목된 곳은 미국계 로펌 에이킨 검프(Akin Gump)다. 다스가 BBK에 투자한 140억원을 되돌려받기 위해 미국에서 소송을 진행할 때 법률대리를 맡은 곳이다.

검찰은 다스 관련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다스가 미국 소송 비용을 무슨 돈으로 지불했는지를 추적하다가 이 로펌을 찾아냈고, 그 돈이 삼성 측으로부터 받은 돈이라는 단서를 잡았다.

갑자기 등장한 것 같지만, 사실 에이킨 검프는 국내 대기업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곳이다. 미국에서 국내 대기업의 특허 소송을 주로 맡았다. 1998년부터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진행한 여러 소송과 법률 자문 등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삼성전자와 애플의 스마트폰 특허소송도 이 로펌 담당이었다. 2013년엔 대통령의 미국 순방 때 성추행 사건에 휘말린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이 로펌이 어떻게 이 전 대통령과 관련된 소송을 맡게 됐을까.

검찰에 따르면, 삼성이 다스 소송과 관련해 에이킨 검프 측에 전달한 돈은 모두 370만달러, 당시 환율로 약 40억원이다. 시기는 2009년 6월부터 2011년 초까지이고, 방식은 매월 일정금액을 자문료 형식으로 전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김백준(78·구속)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이학수(72) 당시 삼성전자 고문(전 삼성 부회장)에게 이 같은 요구를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이 거래를 성사시킨 핵심 인물로 에이킨 검프에서 근무하던 김석한(69) 변호사를 지목하고 있다. 그는 2015년 이 로펌을 나와 미국계 로펌 ‘아널드 앤 포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김 변호사가 다스의 소송을 맡기 전인 2009년 초 청와대에서 이 전 대통령을 여러차례 만난 정황도 포착했다고 한다. 김 전 기획관으로부터 "이 전 대통령이 당시 김 변호사를 최소 두 차례 이상 접견했다"는 진술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학수 전 고문도 검찰 조사 때 자술서를 제출했는데, 비슷한 취지의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이 전 대통령 측은 펄쩍 뛰었다. "다스의 미국 소송 자체에 관여한 바 없다"고 했고, “오히려 변호사에게 사기를 당했다”고도 했다.

이 전 대통령 측 주장은 이렇다.

삼성은 다스 소송이 있기 2년여 전부터 미국 내 특허소송 등 여러 사건을 대비하기 위해 에이킨 검프와 법률 자문 계약을 맺고, 매월 일정금액을 지급하고 있었다고 한다. 모두 530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와중에 2009년 6월쯤 에이킨 검프 측이 다스를 위해 무료 변론을 해주겠다며 김 전 기획관에게 접근했다는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현직 대통령의 친형 회사가 사기를 당해 돈을 못찾고 있는 것을 알고 미국의 한 로펌이 돕겠다고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당시 들었었다”며 “대통령과 만났다면 그런 취지에서 접견이 이뤄졌을 것이고, 대통령은 고맙다고 인사 정도 하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에이킨 검프가 제대로 변론도 하지 않고 불성실하게 일을 해서 다스 소송도 끝나기 전에 일에서 손을 뗀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까지 이 전 대통령 측은 “아무리 도와주는 변론이라도 저렇게 무성의하게 할 수가 있느냐”며 오히려 불쾌해 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보니 에이킨 검프가 겉으로는 다스 소송을 무료로 도와주는 것처럼 하면서 뒤로는 삼성 측으로 받던 자문료를 다스 몫으로 챙겼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다스 소송에서 손을 떼면서 삼성 측으로부터 받던 돈도 중단됐다는 것이다.

이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삼성이 주던 법률 자문료의 일부가 일정 기간동안 다스 몫으로 쓰인 것이 뇌물이라는 게 검찰의 주장인데, 법률 자문의 목적이 달라진 데 따른 새로운 계약이 맺어졌는지, 기존 삼성의 계약 내용은 무엇이고 언제 종료된 것인지 등이 소상히 밝혀져 야 할 것”이라며 “지금까지만 보면 검찰이 사실 관계 확인도 덜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뇌물로 단정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소송비 대납 의혹을 풀기 위해서는 김 변호사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말이 나왔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이 직접 지시하고, 개입해서 이뤄진 일인지를 확인하려면 의혹의 당사자인 김 변호사를 조사해야 퍼즐이 맞춰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미국 영주권자인 김 변호사가 국내로 들어올지 미지수다. 현 수사단계에서는 참고인 신분이기 때문에 강제 소환도 쉽지 않다. 검찰 관계자는 "(김 변호사가) 없다고 해서 진행 중인 수사에 차질이 생기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했다. 김 변호사를 조사하지 않더라도 이 전 대통령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만큼 자신있다는 이야기다.

검찰은 삼성과 별도로 현대차그룹도 에이킨 검프에 100만달러(약 10억원) 안팎의 돈을 다스의 소송비용 명목으로 대납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이에 대해 현대차 측은 "특허소송 비용을 에이킨 검프에 지출한 적은 있지만, 다스 대납과는 무관하다"고 했다. 삼성의 경우 이학수 전 고문이 김백준 전 기획관으로부터 다스 관련 부탁을 받았다는 진술을 했지만, 현대차와 관련해 검찰은 아직 직접적인 증언이나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삼성과 현대차 모두 이명박 정부 시절 총수가 특별사면을 받은 기업들”이라며 “이번 수사가 완성되려면 당시 정권이 특별사면을 대가로 뇌물을 받아챙겼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