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종교전문기자

"개신교는 한국 사회복지의 70~80% 정도를 감당하고 있다."

우리나라 개신교계 인사들이 평소 강조하는 말이다. 이 말에는 약간의 섭섭함이 묻어 있다. 이렇게 노력하는데 사회가 알아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실 개신교와 천주교는 우리 근대사에 '개화'와 '문명'을 선물했다. 이 땅에 근대식 교육과 의료체계를 전수했고 동족들도 꺼리던 한센병 환자를 거두고 고아를 돌보는 등 구제 활동에 앞장섰다.

6·25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사회복지의 많은 부분을 개신교계가 맡았고 지금도 이런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 당시 종교계는 절대 빈곤의 나락에 빠진 국민이 꼭 필요하고 절실한 일들을 했다. 배움에 대한 열정을 풀어줬고 손 못 쓰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낸 것이다. 당시 국민의 종교인에 대한 시선은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우리 종교 단체와 NGO가 개발도상국에서 구호 활동으로 칭송받는 것은, 그들이 국내에서 수십 년 동안 실천하며 익힌 노하우 덕분인지도 모른다.

그사이 세상도 바뀌었다. 우리 사회가 절대 빈곤 상태를 벗어나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로 성장하면서 복지 시스템도 덩달아 발전한 것이다. 종교계 복지 업무 종사자들 스스로 "요즘은 정부가 워낙 다양한 복지 지원 시스템을 잘 갖춰놔 종교계가 할 일이 많이 줄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절대 빈곤이 줄었을 뿐 상대적 취약 계층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리고 그물망이 아무리 촘촘해도 구멍은 있기 마련이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 위해 종교계가 할 일은 줄어든 게 아니라 더 늘었을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부분에 종교계가 사랑과 관심을 갖고 더 헌신했다면 지금 느끼는 '섭섭함'은 훨씬 줄지 않았을까.

한국 종교계가 사회적 신뢰와 호감을 회복할 기회는 더러 있었다. 저출산 문제만 해도 개신교계는 2005년 '영·유아 보육운동본부', 2010년엔 '출산장려국민운동본부'를 출범하겠다고 발표했다. 전국의 교회들이 영·유아 보육시설을 마련해 돌보겠다는 청사진이었다. 수십 개 교단이 연합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이후 개별 교회 차원에서 출산장려금을 지원하는 식의 일부 성과가 있었으나 전체 개신교계의 역량을 결집하지 못했다. 그렇게 '골든 타임' 10여 년을 허송했다. 급기야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선 조사 실시 후 처음으로 '종교 인구'가 한국 인구의 절반 밑(43.9%)으로 떨어졌다. 종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크게 식어버린 것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최근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추진하는 '여의도청년장학관' 프로젝트와 조계사 어린이집은 신선한 시도다. '장학관'은 만 18세가 넘어 보육원을 퇴소(退所)하는 청년들이 교육을 마치고 취업할 때까지 주거 걱정을 덜어준다. 또 보육원을 퇴소하는 청년들에게 정착금과 취업을 위한 교육비, 교육 기간 중 숙소비, LH공사의 전셋집 등을 지원해 준다고 한다. 시스템으로 보면 거의 완벽에 가깝지만 사랑의 '빈틈'까지 채워주지 못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장학관'은 멘토단(團) 운영 등을 통해 가족 수준의 보호와 지원을 지향한다. 정부의 복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현장에서 세밀하게 돕는 것이다.

올 9월 개원 예정인 조계사 어린이집은 "조계사 주변에만도 직장인이 수만명인데 어린이집이 없다"는 각성에서 출발했다. 낮 시간은 물론 밤 10시까지 몇 개 반(班)을 운영할 계획이다. '한국 불교 1번지'를 자임하는 조계사는 이를 위해 2016년 매입한 인근 을유문화사 건물을 내놓았다. 건물 리모델링 비용과 운영비는 국비와 지자체(서울 종로구) 예산으로 마련한다. 정부·지자체와 종교기관 3자(者) 협력 사례이다.

'장학관'과 '어린이집'은 선행(善行)에도 연구와 노력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세상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절실하게 공감(共感)하려는 자세 말이다. 그 밑바탕에 사랑과 자비가 충만하게 깔려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