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썰매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딴 윤성빈(24)의 스켈레톤 바닥엔 수박만 한 '태극기 주먹'이 그려져 있다. 윤성빈은 "나의 의지를 상징하는 것 같아서 문양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결성되면서 선수들 가슴엔 태극기 대신 한반도기가 새겨졌다. '태극기 실종'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다른 종목의 우리 선수들은 의지, 수호신, 기회, 모정(母情), 우정, 자부심을 상징하는 태극기를 잊지 않았다. 아이스하키 남자 대표팀 골리인 맷 달튼(32·캐나다 출신)의 헬멧 뒤쪽엔 태극기가 있다. 그는 당초 헬멧 옆쪽에 충무공 이순신을 수호신의 의미로 그려 넣었는데,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정치적 중립성 훼손을 이유로 이를 금지하면서 태극기만 남았다.

지난 13일 평창올림픽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금메달을 따낸 재미교포 클로이 김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자 어머니 윤보란씨가 닦아주는 모습(왼쪽 큰 사진). 검지 손톱에 태극기 무늬로 네일아트를 했다. 오른쪽 위 사진은 태극기가 그려진 스피드스케이팅 박승희의 손톱. 가운데 사진은 컬링 대표팀 빗자루에 새겨진 태극기. 아래 사진은 스피드스케이팅 주형준의 스케이트. 손톱만 한 태극기와 함께 ‘어려움이 있는 곳에 기회가 있다’는 문구가 영어로 새겨져 있다.

독일에서 귀화한 여자 루지의 아일린 프리쉐(26)의 썰매에도 A4 용지 크기의 태극기가 그려져 있다. 누운 자세에서 썰매를 타는 종목 특성상 주행 중에는 태극기가 몸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프리쉐에게 태극기는 기회였다. 2015년 은퇴했다가 대한루지경기연맹의 제안을 받고 특별 귀화해 태극 마크를 달았고, 이번 대회 8위를 하며 한국 루지 사상 올림픽 최고 성적을 냈다.

스피드스케이팅 주형준(27)의 스케이트에는 손톱만 한 태극기와 함께 'There is an opportunity where there is a difficulty(어려움이 있는 곳에 기회가 있다)'라는 영어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는 작년 혈소판 부족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시련을 이겨내고 올림픽에 출전, 남자 1500m 경기에서 17위를 했다.

재미교포 클로이 김(18)은 지난 13일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결승에서 금메달을 딴 뒤 눈물을 흘렸다. 이 눈물을 닦아준 어머니 윤보란씨의 검지 손톱에 태극기가 그려져 있었다. 윤씨는 미국 대표로 올림픽에 나선 딸을 응원하는 뜻으로 오른손에는 태극기, 왼손에는 성조기 무늬 네일아트를 했다고 한다.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대표 박승희도 왼손 넷째 손가락 손톱을 태극기 무늬로 꾸몄다. 지난 14일 1000m 경기를 16위로 마친 박승희는 울음을 터뜨렸다. 2014 소치올림픽 쇼트트랙에서 2관왕에 올랐던 박승희는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한 후 절친 (노)진규가 '너는 할 수 있다'고 얘기해준 게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고 했다. 쇼트트랙 대표였던 노진규는 2014 소치올림픽을 앞두고 골육종 진단을 받았고, 투병 끝에 2016년 4월 세상을 떠났다.

여자 컬링 선수들의 브룸(비)에도 태극기가 그려져 있다. "헐~헐~헐(Hurry·빨리 비질하라는 뜻)!" 구호에 맞춰 선수들이 태극기가 새겨진 브룸으로 스톤이 지나가는 빙판 위를 닦으며 캐나다·스웨덴·스위스 등 강호를 잇따라 물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