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등을 대상으로 상습적인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된 유명 극작가이자 연극 연출가 이윤택 전(前)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면서 “법적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이씨는 그러나 성폭행까지 했다는 폭로에 대해서는 “성관계를 한 것은 맞지만 성폭행은 아니었다”고 부인했다.

이씨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30 스튜디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성폭행의 진위는 법적 절차로 가려야 하며, 이에 따른 처벌을 받겠다”고 했다. 성관계를 한 것은 맞지만, 폭력적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 성폭행은 아니라는 취지의 주장이다.

앞서 여배우라고 밝힌 A씨는 온라인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에 올린 글에서 "이윤택에게 극단에 있었던 2001년 19세에, 극단을 나온 2002년 20세에, 이렇게 두 번의 성폭행을 당했다"고 썼다.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기자회견을 갖고 공개 사과하고 있다. 그는 성폭행 관련해서는 “법적 절차를 밟아 진위를 가리겠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이씨는 과거 자신의 성추행 행위에 대해서는 "과거 연희단거리패 단원들이 (성폭력에 대해) 항의할 때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매번 약속했지만 번번이 제가 그 약속을 못 지켜 큰 죄를 짓게 됐다"며 어떨 때는 나쁜 짓인지 모르고 저질렀을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죄의식을 가지면서 제 더러운 욕망을 억제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A씨의 주장에 대해서는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폭로는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 그는 “행위 자체는 있었지만 제가 폭력적이고 물리적인 방법으로 성폭행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윤택은 성폭행했느냐는 질문에 “안 했다”, 성관계를 가졌느냐는 물음에는 “네”라고 대답했다. 이에 취재진이 성폭행 여부를 따져 묻자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기자들이 “성폭행을 인정하지 않는데 왜 피해자에게 사과한다는 말을 하느냐”고 질문하자, 그는 “이 자리에서 하는 사과는 어떤 한 특정인의 사과를 뛰어넘어, 모두에 대한 사과, 연극계에 대한 사과, 관객에 대한 사과를 (말한다)”는 대답을 내놨다. 이에 기자회견장을 찾은 한 극단 관계자는 “개인에 대한 사과를 먼저 하라”며 소리를 지르며 항의했다.

이윤택은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온 주장 중에는 사실이 아닌 것도 있다"면서 "이 문제를 여기서 왈가왈부하거나 진위를 밝힐 수는 없어 법적 절차가 필요하며, 사실과 진실이 밝혀진 뒤 그 결과에 따라 응당 처벌받아야 한다면 (처벌) 받겠다. 사실과 진실에 따라 모든 것이 심판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이 폭로한 이씨의 ‘상습적인 강제 안마’에 대해서는 “안마는 내가 시켰다”며 “지금은 안마에 대해서 내 잘못을 통감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그러지 못했다). 내 탓이다”라고 했다. 극단 배우들에게 강제로 자신의 성기를 만지게 하는 등 성폭력을 일삼았다는 의혹을 인정한 것이다. 그는 이런 행위를 ‘안마’라고 지칭하면서 배우들에게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한국 연극계의 대표적 극작가·연출가다. 부산일보 편집부 기자, 서울예술전문대 극작과 교수를 거쳐 1986년 부산에서 연희단거리패를 창단해 지금까지 이끌어왔다. 부산 가마골 소극장과 밀양 연극촌 예술감독으로 지냈다. 국립극단 예술감독과 서울예술단 대표감독도 역임했으며 각종 연극상을 수상했다.

앞서 지난 14일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는 10년 전 지방공연 당시 이씨로부터 성추행당한 사실을 폭로했다. 이후 다른 피해자들도 소셜미디어에 추가 폭로를 하면서 논란이 거세졌다. 그는 현재 모든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이날 기자회견이 마무리되자 이씨는 안경을 벗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