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평창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프리 스케이팅이 열린 17일 오후 강릉아이스아레나.

이날 일본의 ‘피겨 킹’ 하뉴 유즈루(羽生結弦·24)가 금메달을 최종 확정 지은 순간 캐나다 출신의 브라이언 오서(56) 코치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하뉴를 힘껏 부둥켜 안았다. 그런데 오서는 일본팀 유니폼이 아니라 스페인 국기가 새겨진 하늘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오서의 목에는 한국팀 소속이라고 적힌 AD카드(Accreditation Card·승인카드)가 걸려있었다.

하늘색 스페인 유니폼을 입은 브라이언 오서 코치가 17일 자신의 제자인 일본의 하뉴 유즈루가 금메달을 확정짓자 포옹하며 축하하고 있다.

이런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된 것은 오서의 ‘'잘 나가는' 3국 제자들 때문이다. 오서는 이날 옷만 세 번을 갈아입으며 누구보다 바쁜 하루를 보냈다. 오서는 개최국 한국의 기대주인 차준환(17·휘문고)이 세 제자 가운데 가장 먼저 빙판에 나서자 흰색 바탕의 한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지도했다. 차준환과 키스앤크라이존(kiss & cry zone·경기를 마친 선수들이 코치가 함께 점수를 기다리는 자리)에 앉은 뒤엔 한국 유니폼을 벗고 일본팀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뒤 하뉴를 지도했다. 정작 하뉴가 최고의 연기를 펼치고 키스앤드크라이존에 등장했지만 오서 코치는 함께 앉지 못했다. 또 다른 제자인 스페인의 하비에르 페르난데스(26)의 연기가 바로 뒤에 시작돼 스페인팀 복장으로 다시 갈아입고 페르난데스의 연기를 지도해야 했기 때문이다. 페르난데스는 이날 305.24점으로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경기가 끝나고 두 제자 하뉴와 페르난데스가 모두 시상대에 오르자 오서는 휴대전화로 두 선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오서는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이들 3명 외에 개브리엘 데일먼(캐나다)과 엘리자베트 투르신바예바(카자흐스탄) 등 여자 싱글 선수들의 지도도 맡고 있다. 피겨스케이팅에선 규정상 코치 한 명이 국적이 다른 여러 선수를 지도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 그런데 오서의 AD카드엔 'Republic of Korea'(한국)가 적혀 있었다. 다국적 선수들을 가르치는 코치라도 특정 국가의 선수단에 속해야 대회에 참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서는 무엇보다 ‘김연아의 스승’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하다. 그는 이번 평창올림픽을 통해 명실상부한 피겨계 '금메달 연금술사'로 우뚝 섰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 김연아의 여자 싱글 금메달을 시작으로, 2014 소치올림픽에 이은 하뉴의 올림픽 2연패(2014년 소치올림픽)를 도우며 코치로서 올림픽 3연패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오서는 선수 맞춤형 지도로 명성을 얻으며 '명장' 반열에 올랐다. 2006년 김연아의 전담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오서는 말 대신 함께 스케이트를 타며 지도했다. 이렇게 해야 해당 연기에 필요한 ‘에너지’를 잘 전달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오서는 김연아가 대회에 나설 때 안무를 따라 하는 모습 때문에 국내 팬 사이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밴쿠버올림픽 이후 김연아와 결별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빚으며 논란을 남기기도 했다. 이후 캐나다로 돌아간 오서 코치는 유망주 발굴에 전념했다.

17일 일본 하뉴 유즈루가 연기를 펼친 후 오서 코치의 축하를 받고 있다.

오서가 하뉴를 만난 건 2012년이었다. 하뉴는 당시 '피겨 신동'으로 주목받았지만 세계 정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오서는 현역 시절 올림픽 금메달에 두 번 연속 실패했던 자신의 경험담을 하뉴에게 들려주며 빈틈없이 훈련시켰다. 특히 하뉴의 점프를 한 단계 향상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서는 2015년부터 지도하고 있는 차준환의 성장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오서 코치는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차준환의 시대는 아마 다음 올림픽 때 올 것이다. 지금은 대중에게 그가 훌륭한 스케이터로 인식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서는 코치로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에 올랐지만, 정작 현역 시절에는 올림픽 금메달을 한 번도 따지 못했다. 그는 1984년 사라예보올림픽, 1988년 캘거리올림픽 남자 싱글에서 연거푸 라이벌에 밀려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이 때문에 '제자들을 통해 선수 시절의 한을 풀었다'라는 얘기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오서는 스스로의 아쉬움과 제자들의 성과를 철저히 구분해야 한다고 힘줘 말한다. 오서는 지난 16일 캐나다방송 CBC 인터뷰에서 "제자들이 딴 금메달은 자신들의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받은 것"이라며 "나의 명예회복과 연결짓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