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가장 인기 높은 설 특집 TV프로그램이 흑인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15일 밤 방송된 CCTV의 ‘춘완(春晩)’의 한 코미디 콩트 코너에서 중국의 유명 배우인 러우나이밍(娄乃鳴)은 얼굴을 검게 칠한 채 아프리카 토속 복장으로 보이는 옷차림으로 등장했다. ‘아프리카 여성처럼 보이겠다’는 이유로 엉덩이와 가슴 등 특정 신체 부위를 두툼하게 보이는 장식도 입었다. 뒤이어 원숭이 인형을 입은 배우가 머리 위에 과일 바구니를 들고 나타나는 한편, 사자 등 동물들과 함께 배우들이 원주민 춤을 추는 장면도 연출됐다.

중국 간판 설날 프로그램이 흑인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흑인을 비하하는 것처럼 보이는 분장은 전 세계 곳곳에서 바로 논란이 됐다. ‘더데일리 네이션’ 등 아프리카 현지 매체들은 “중국은 경제 협력 이외에는 모든 것이 폐쇄적이라 상대국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면서 중국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또한 민영 상업방송도 아닌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관영 방송사가 자국 시청자의 입맛만 고려해 흑인을 우스꽝스럽게 그린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상당수 중국인은 “중국인이 흑인처럼 보이기 위해 검은칠을 하는 게 무엇이 문제냐”, “서양의 가치관에 일일히 대응할 필요가 없다”면서 맞서고 있다. CCTV 역시 논란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얼굴에 검은칠을 하고 원주민 흉내를 내는 것이 단순히 코미디를 넘어서 ‘인종 차별’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초 얼굴에 검은칠을 하고 흑인 흉내를 냈던 미국의 연극 포스터

논란에 휩싸인 이 콩트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핵심 과제인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찬양하는 게 핵심 콘셉트였다.

케냐가 배경인 이 콩트에선 중국이 케냐에서 나이로비까지 고속철도 등을 건설해 주는 등 아프리카에 호의를 베푸는 은혜로운 나라로 그려진다. 흑인 여성이 부유한 중국인 남성과 결혼하고 싶다고 하고 우스꽝스럽게 소리를 지르는 한편, 한 흑인 분장을 한 배우는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싶다는 등 중국을 찬양하는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한 배우가 “나는 중국인을 사랑해요”라고 외칠 땐 방청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중국에선 최근 이처럼 중화주의를 강조하는 영화와 영상물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사상 최대 흥행 성적을 거둔 ‘특수부대 전랑2’ 역시 2015년 예멘 내전 당시 중국 인민해방군의 활약을 그린 영화였다.

설 특집 TV 프로그램인 CCTV의 ‘춘완’은 매년 시청자가 7억~8억명에 달할 정도로 중국에서 가장 인기 높은 간판 프로그램이다. 중국 정부가 인기에 편승해 당국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으려 하다보니, 프로그램의 정치적 색깔도 매년 더 짙어지는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