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동계올림픽의 꽃'인 아이스하키의 ‘빙판 주먹다짐’을 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답은 ‘아니다’.
갑옷처럼 차려입고 전속력으로 하얀 빙판을 누비는 선수들, 퍽(하키에서 사용되는 공)과 스틱(하키 채)이 빠르게 부딪치며 내는 둔탁한 소리, 여기에 격렬한 빙판 위 주먹다짐까지 합쳐지면 아이스하키의 ‘빠르고 거친’ 매력이 완성된다.

아이스하키는 그 어떤 종목보다도 강렬한 신체 접촉이 허용되는 스포츠로 유명하다. 1 대 1 싸움도 규칙상으로 허용되는 유일한 구기종목이다. 선수들은 빙판 위에서 빠르게 스케이트를 타면서 직접 몸과 몸끼리 부딪치는 ‘보디체크(Body check)’를 할 수 있다. 보디체크는 퍽을 가지고 있는 상대 선수를 몸으로 가격해 퍽의 소유권을 빼앗아 오려는 시도를 말한다. 이렇게 아이스하키는 대놓고 몸싸움을 허용하기 때문에 아이스하키 선수들을 ‘빙판 위 전사’로 묘사하기도 한다.
한발 더 나아가서,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나 유럽 프로리그에서는 아이스하키 선수 간 싸움이 경기 관람의 묘미로 꼽힌다. 바로 ‘하키 파이트(hockey fight)’이다. 하키 파이트는 공식적인 규정이나 용어는 아니지만, 아이스하키에서 관례적으로 통용된다. 하키 파이트는 보디체크 같은 몸싸움을 넘어서 아예 대놓고 주먹다짐을 하는 것이다.
하키 파이트를 위해 각 팀에서는 전문 싸움꾼인 ‘인포서(enforcer·집행자)’를 1~2명씩 둔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거나 상대 선수의 경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빙판으로 뛰쳐나와 몸싸움을 한 다음 퇴장당하는 것이 인포서의 주 역할이다. 경기 중 두 팀의 격앙된 감정을 인포서가 1대1로 붙어 감정을 풀어버리고 다시 경기에 집중하라는 취지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프로야구에서 두 팀 선수가 모두 그라운드로 몰려나와 뒤엉켜 싸우는 ‘벤치 클리어링’하고는 다르다. 한국에서는 박태환 전 아이스하키 선수가 인포서로 알려져 있다.
선수가 싸우기로 작정하고 글러브를 벗으면 심판도 싸울 시간을 준다. 선수들 간 암묵적인 원칙만 잘 지키며 싸운다면 심판은 이를 말리지 않는다. 싸움은 주로 1대1로, 스틱이 아닌 주먹을 사용하는 것이 ‘매너’다. 여러 명이 붙어도 1대 1씩 싸우며, 2대 1로 주먹다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 명이 넘어지거나 코피를 흘리면 싸움을 끝낸다. 이때 경기장에서는 싸움을 북돋는 듯한 경쾌하고 진취적인 음악이 흘러나오고 관중들은 이에 환호한다.
그러나 올림픽 경기에서 보디체크는 허용되지만, 하키 파이트는 허용되지 않는다. 폭력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갖추고 있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에선 주먹다짐을 할 수 없다. 또 국가 대 국가로 붙는 것인 만큼 국가끼리 ‘예민할 수 있는 일’을 사전에 방지하는 측면도 있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 관계자는 “올림픽은 국가끼리 붙는 경기이다 보니 주먹다짐이 오가면 서로 기분이 상할 수 있는 만큼 이를 지양한다”고 설명했다.
올림픽 경기 중에 우발적인 하키 파이트가 일어나도 심판들이 강하게 제지한다. 폭력에 대한 징계도 NHL에 비할 수 없이 강하다. NHL에서는 주먹대결은 한 선수들이 5분씩 퇴장당하면 끝나는 반면, 올림픽에서는 해당 경기 퇴장과 함께 그다음 경기까지도 출전을 하지 못할 수 있고 심판 재량에 따라 출전 정지가 더 오래갈 수 있다. 출전이 막히게 되면 본인은 물론, 팀 전체에 체력적, 전략적으로 큰 손해를 입히게 되므로 선수들도 알아서 삼가는 분위기다.

올림픽 아이스하키 경기를 제대로 즐기려면 남자 경기와 여자 경기의 아이스하키 룰이 다른 것도 기억해야 한다. 여자경기는 승점제와 연장전 규정은 남자 경기와 같지만 조별리그 편성 등은 다르다. 룰이 다른 것은 남자(12개 팀)보다 여자(8개 팀) 쪽이 팀 숫자가 적고, 여자팀 간의 실력 격차도 커 수준이 비슷한 국가끼리 경기를 펼치게 하기 위함이다.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는 조별리그 편성부터 특이하다. 4개국씩 2개 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치르는데, A조(미국, 캐나다, 핀란드, 러시아)는 상위 랭킹 4개국으로 이뤄지고, B조(스웨덴, 스위스, 일본, 한국)는 하위 랭킹 4개국으로 편성됐다. 대부분 경기가 추첨을 통해 조편성이 되는 것과 다르다. 국가 간 실력 격차가 커 2014 소치동계올림픽부터 상위권과 하위권으로 나눈 것이다. 8개 팀이 출전해 수평적으로 치러진 2010 밴쿠버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조별리그에서 상위권 팀인 미국과 캐나다는 하위권 팀을 상대로 18-0, 13-0 등의 성적을 거둔 일이 있다.
남자 경기와 달리 여자 경기에서 원칙적으로 보디체크도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원칙일 뿐 실제 경기에서는 여자 경기에서도 어느 정도 선까지 보디체크를 허용하고 있다.
한편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코리아는 10일 스위스와 여자 조별예선 B조 대결을 시작으로 평창동계올림픽의 포문을 연다. 오는 15일에는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체코와 조별예선 A조 대결을 펼친다.
▲ 하키 파이트 장면./유투버 BeakIncV2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