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白衣)의 스케이터가 얼음판 위에 등장하자 평창올림픽 스타디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우아한 몸짓으로 아이스링크를 가볍게 돈 그가 성화봉을 건네받아 간이 성화대에 불을 붙였다. 기둥을 타고 올라간 불이 달항아리 모양의 성화대에 옮겨 붙었다. 올림픽 개회식을 찾은 3만5000명 관중이 모두 일어나 환호를 보냈다. 사상 첫 한국 동계올림픽의 시작을 선언하는 불을 밝힌 주인공은 '피겨 여왕' 김연아(28)였다. 김연아는 9일 오후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 최종 성화 주자로 나서 올림픽 성화대를 밝혔다. 지난 2014 소치 대회 이후 은퇴한 그는 성화대 밑에 마련된 소형 아이스링크 위에서 현역 시절처럼 피겨 연기를 선보인 뒤 불을 옮겼다.

스케이트 타고 마지막 주자로… - 흰색 드레스와 스케이트 차림의 ‘피겨 여왕’ 김연아가 성화를 마지막으로 건네받기 전 성화대 아래쪽에 만들어진 작은 빙판 위에서 연기하는 모습.

이날 김연아에 앞서 쇼트트랙 레전드 전이경(42), 골프 여제 박인비(30), 2002 한·일 월드컵 영웅 안정환(42)이 차례로 성화봉을 들고 스타디움 안을 달렸다. 이어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박종아(22·한국)와 정수현(22·북한)이 깜짝 등장해 성화를 함께 잡고 뛰면서 개회식 분위기가 고조됐다. 마지막으로 김연아가 성화대를 밝히자 식장은 축제 현장으로 변했다. 성화는 25일 폐회식까지 타오르게 된다.

김연아는 2010 밴쿠버올림픽에서 한국 최초로 피겨스케이팅 금메달을 따낸 데 이어 2014 소치 대회 때는 은메달을 목에 걸며 '피겨 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2011년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 투표' 당시 후보 도시 프레젠테이션에 연사로 나섰다.

올림픽 성화 점화 행사는 개회식 최고 하이라이트다. 대부분 개최국의 '스포츠 영웅'이 점화자로 깜짝 등장했다. 1996년 미국 애틀랜타 대회에선 파킨슨병을 앓던 '복싱 전설' 무하마드 알리가 손을 떨며 힘겹게 성화대에 불을 붙이는 모습이 올림픽사(史)에 기록될 명장면으로 남았다. 2010 밴쿠버 대회에선 캐나다 아이스하키의 전설 웨인 그레츠키가 최종 점화자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