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한국인 7명이 현지 당국에 구금됐다가 풀려났다. 외교부에 따르면 모두 불법 체류 등 말레이시아 이민법상 불법 행위를 저지른 혐의였다. 그중 3명은 소위 '아이돌 대포'였다. 1월 22일 쿠알라룸푸르 네가라 경기장에서 한국의 인기 보이그룹 '워너원'이 팬미팅을 열였는데 행사장 근처에서 본인들이 직접 만든 워너원 화보 등 '굿즈(상품)'를 팔다가 적발된 것이다. 관광비자로 들어온 이들이 영리 목적으로 허가받지 않은 상품을 팔았기 때문이었다. 소셜미디어에선 이들이 잡혀가는 모습을 찍은 사진과 함께 "(굿즈) 판매한 '대포'들 다 잡아갔다" "원래 이렇게 공개적인 곳에서 (물건을) 파느냐. 이 정도면 나 잡아가라는 것 아니냐"는 등 목격담 수십 건이 올라왔다.

한 아이돌 가수의 쇼케이스 행사장에서 고성능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아이돌 대포’들. 이런 아이돌 대포 중 일부는 촬영한 사진으로 상품을 만들어 고수익을 올린다.

'아이돌 대포'는 10~20대 아이돌 가수 팬클럽 사이에서 통용되는 은어다. 수십만~수백만원대 고성능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가수 사진을 찍은 뒤 그걸로 굿즈를 만들어 파는 팬을 가리킨다. 보통 렌즈 길이가 수십cm에 달해 대포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은 것. 이런 대포들은 아이돌 산업이 본격적으로 커지던 2010년쯤부터 나타났다.

초기엔 자신이 찍은 사진을 팬들과 공유하며 즐기던 팬문화의 하나로 시작했지만 이후 급격하게 '산업화'됐다. 대포들이 고화질 사진을 이용해 화보나 달력, 스티커부터 머그컵, 시계 등 각종 물건을 만들어 팔면서 돈벌이에 나선 것이다. 싼 것은 1000~2000원 하는 것부터 10만원이 넘는 것까지 다양하다. 아이돌 공연이나 팬미팅, 신보 발매 행사장 등 주변엔 어김없이 이런 대포들이 나타나 좌판을 벌인다. 아예 이런 굿즈만 전문으로 파는 인터넷 쇼핑몰도 있다. 대포들이 만드는 굿즈가 소속사에서 내놓는 공식 굿즈보다 퀄리티가 좋은 경우가 많아 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덕이다. 2014년부터 '대포' 활동을 했다는 김모(27)씨는 "한 달 수입이 많을 땐 1500만원 정도까지 찍어봤다"며 "요즘엔 국내보다 해외 팬들이 수요가 더 많아서 해외 출장도 많이 간다"고 했다. 김씨는 엑소 등 인기 아이돌의 해외 공연이 잡히면 비행기 일정표를 알아내 같은 클래스의 좌석을 잡아 밀착 마크하며 사진을 찍는다. 희귀한 사진일수록 고가에 거래되기 때문에 파파라치에 가까운 사진도 많이 찍는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문제는 이런 대포들의 활동이 모두 저작권법 등에 위배되는 불법 행위란 점이다. 하지만 가수나 소속사는 속수무책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 연예기획사 대표는 "한동안 공연장에 오는 '대포'들을 단속했더니 팬클럽 차원에서 '왜 우리가 좋아서 하는 일을 방해하느냐'며 보이콧을 하겠다고 하더라"며 "아이돌 가수는 결국 팬덤의 요구를 거스르기 어렵기 때문에 이들을 단속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