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조선 하나 되는 통일이여라."
"우리 민족 하나 되는 통일이여라."

현송월 삼지연 관현악단 단장이 이끄는 북한 예술단의 첫 공연에 앞서, 북한 체제 선전곡으로 논란이 됐던 북한노래 세 곡이 결국 제대로 공연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 찬양으로 문제가 됐던 노래는 가사를 수정하거나 가사를 뺀 경음악으로 연주됐고, 일부 곡은 아예 공연되지 못했다.

지난 8일 강릉아트센터에서 열린 북한 예술단 공연을 관람한 인사들에 따르면 공연단은 이날 공연에서 ‘백두와 한나(한라)는 내 조국’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 가사 3절에는 “태양 조선 하나 되는 통일이여라”라는 부분이 나온다. 태양 조선은 ‘김일성(태양)의 북한’을 상징하는 말로서, 북한 체제를 찬양한다는 논란이 있었다. 이에 우리나라 정부 측이 논란이 되는 부분을 삭제하거나 아예 다른 노래로 대체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로 인해 공연 시작 시간이 예정보다 10분 늦게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소속으로 한국에 온 예술단원들이 8일 저녁 강원도의 강릉아트센터 사임당홀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 기원 축하 공연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지난 7일 국가정보원(국정원) 측에서 일부 노래와 노래 가사에 대해 북한 측에 문제제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공연에서 노래를 빼거나 가사를 수정한 것으로 보면 남북 간의 협의로 원만히 해결된 것 같다””고 말했다.

남북 정부는 지난 7일 예술단이 묵호항에 도착한 이후부터 공연 내용을 놓고 협의를 진행해왔다. 공연 시작 직전까지 북측이 준비한 ‘백두와 한나는 내 조국’과 함께 ‘모란봉’, ‘내 나라 제일로 좋아’ 라는 곡들의 공연 여부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금수산 제일봉에 아침 햇발이”로 시작하는 민요풍의 모란봉은 노래 중간에 “우리네 평양 좋을시구, 사회주의 건설이 좋을시구”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 ‘내 나라 제일로 좋아’는 “이국의 들가에 피여난 꽃도 내 나라 꽃보다 곱지 못했소” 등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제목과 가사로 문제가 됐다.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는 “묘향산, 금강산, 칠보산 등 북한이 자연 풍경을 공연 배경으로 사용해 북한 색깔을 배제한 노력이 많이 엿보였다”며 “한국가요 11곡, 클래식이 25곡, 북한노래 4~5곡 등 대략 40곡을 1시간40분 간 메들리 형태로 공연됐고, 공연을 사전에 잘 준비해 꽉 채워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북한 노래 ‘반갑습니다’로 막을 올렸다. 북한 예술단은 “여러분 반갑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민족의 경사로 축하하기 위해 강릉을 먼저 찾았습니다”라고 말하며 인사했다. 흰색 저고리에 분홍색 한복 치마 차림의 8명의 여가수가 힘찬 목소리와 호응을 유도하는 율동을 보여줬다.

다음으로 겨울 풍경의 묘사한 북한노래 ‘흰눈아 내려라’를 비롯해 평화를 형상화한 '비둘기야 높이 날아라' 등 북한 노래들이 이어졌다.

한국가요로는 가수 이선희의 'J에게'를 관현악곡으로 편곡해 여성 2중창과 코러스로 소화해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이어 한국가요 '여정'을 여성 가수가 독창했고 한복을 입은 여러 명의 여가수들은 우리 대중가요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그때 그사람’, 패티킴의 ‘이별’, ‘당신은 모르실거야’ 나훈아의 '최진사댁 셋째딸' 등도 불렀다.

핫팬츠 차림의 5명의 가수는 ’달려가자 미래로‘라는 빠른 템포의 노래를 부르며 우리나라 걸그룹을 연상시키는 경쾌한 율동으로 공연장의 분위기를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뒤이어 유명 클래식 곡들을 편곡해 연이어 들려주는 관현악 연주가 이어졌다. 관객들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비롯해 ‘백조의 호수’, ‘터키행진곡’, ‘모짜르트 행진곡 40번’, ‘오 솔레미오’ 등 클래식 곡을 들을 수 있었다.

객석에서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최문순 강원도지사, 최명희 강릉시장, 유은혜 민주당 의원,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진옥섭 한국문화재단이사장 등 정계와 문화계 인사들이 다수 눈에 띄었다. 이들은 공연 시작 전 삼지연관현악단의 현송월 단장과 함께 등장해 객석 중앙에 자리했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관람객은 총 812명으로 이 가운데 문화계, 체육계, 사회적 약자, 실향민, 이산가족 등 정부 초청 인사가 252명이고 나머지 560명은 추첨으로 선발된 일반 시민이었다.

삼지연관현악단은 지난 6일 여객선인 만경봉 92호를 타고 원산항을 출발해 동해 해상경계선을 넘어 동해 묵호항에 도착했다. 삼지연관현악단은 강릉 공연 후 서울로 이동해 11일 오후 7시 국립중앙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두 번째 공연을 하고 육로로 귀환할 예정이다. 북한 예술단이 남쪽에서 한 공연은 2002년 8월 서울에서 열린 8·15 민족통일대회 당시 북한 예술단이 동행해 공연한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공연을 본 천현식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는 “장룡식 삼지연관현악단 지휘자를 비롯해 북한의 문화예술 국가대표 격인 사람들이 공연에 참여해 공연의 완성도는 높았다”며 “특히 서양식의 전자악기 연주에서 일부 북한식 태평소인 세납과 꽹과리 소리가 들려 국악의 미를 느낄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