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밤 전화 통화를 가졌다. 지난달 10일 남북 고위급 회담 직후 통화를 한 지 23일 만이다. 핵심 주제는 평창 동계올림픽과 대북(對北) 문제였다. 두 정상은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는 한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포스트 평창(평창 이후)' 대북 전략에선 '압박(트럼프 대통령)과 대화(문 대통령)'로 인식 차이를 보였다.

이날 통화는 밤 11시부터 30분 동안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통화를 원했다. 통화 이후 청와대와 백악관은 브리핑을 통해 한목소리로 '평창올림픽 성공적 개최'를 강조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국민에게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했다"고 밝혔고, 청와대도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하지만 '북한 인권' 문제는 달랐다. 백악관은 "두 정상이 북한 인권 상황 개선의 중요성을 논의하고 이 문제에 함께 협력하는 데 서로의 책임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청와대 브리핑에는 북한 인권이 빠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연두교서를 발표하는 자리에 탈북자 지성호씨를 초청해 소개했다. 문 대통령과의 통화 직후에는 백악관으로 탈북자 8명을 초청했다. 대북 압박 수단으로 '인권'을 부각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북한 인권'을 브리핑에서 빠트린 것을 두고 의문이 제기됐다. 외교가에서는 "북한 고위급 대표단 방한을 앞두고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인권 부분을 일부러 뺀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연두교서를 높이 평가하면서 북한 인권 문제를 먼저 꺼냈다"며 "통화의 중점이 북한 인권이 아니라 연두교서였기 때문에 브리핑에 인권을 포함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와 백악관의 정상 통화 브리핑에서 북한 인권이 다르게 처리된 것이 두 정상의 인식 차이 때문이란 관측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평창올림픽을 북·미 대화의 계기로 삼으려는 생각인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평창 이후'에 대북 압박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 확고하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대화 개선의 모멘텀이 지속돼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의 방한(訪韓)이 이를 위한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길 바란다"고도 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북·미 대화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조심스러운 통화"라고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해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미국은 평창 이후 대북 압박을 강화하겠다는 기조가 명확하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지난 2일(현지 시각) 한국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는 북한에 최대의 압박을 가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현 정부 전체가 지시받은 사항이며 전 세계가 동참하고 있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전략적 인내 시대가 끝났다는 간단명료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평창에 간다"고 했다. 한·미가 평창 이후 상황에 대해선 서로 다른 곳을 쳐다보는 모습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우리는 평창이 북·미 대화로 가는 단초가 되기를 기대하는데, 미국의 압박·제재 기조는 변한 것 같지 않다"고 했다. 다만 "대화에 대한 미국의 문(門)이 완전히 닫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미·일(美日)은 대북 압박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 밤 문 대통령과의 통화 직전 아베 신조 총리와 1시간 동안 전화 통화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압력을 유지하려는 일본의 노력에 감사한다"고 했다. 아베 총리는 "북한의 '미소 외교'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 대북 제재를 계기로 유지됐던 '한·미·일 안보협력'이 평창 이후 자칫 흐트러질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