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해 사실을 고발하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캠페인이 가해 남성을 저격하는 수준을 넘어 여성 차별적인 세상을 공격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미투'가 여성을 성적(性的) 대상으로 취급하는 관행과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환기시키면서 공연과 전시 행태에 변화가 나타나고, 스포츠계의 오랜 직업군이 사라지는 등 영향을 받고 있다.

'미투'에 가장 눈에 띄는 반응을 보인 것은 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원(F1)이었다. 포뮬러원이 지난달 31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수십년간 이어진 '그리드걸(레이싱걸)' 고용 관행이 현대 사회 규범과 상충한다고 생각한다"며 "2018년부터 '그리드걸'을 활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리드걸'은 포뮬러원의 인기 요인 중 하나였지만, 선정적인 복장 때문에 '여성 성상품화'라는 비판과 성희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포뮬러원 측은 미투 광풍이 불던 지난해 12월부터 그리드걸 제도의 폐지를 고민했다고 한다. BBC는 "포뮬러원이 미투 시대의 맥락에 맞는 올바른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스포츠계의 성평등을 추구하는 단체 '우먼스스포츠트러스트'는 아예 "복싱·UFC 등 다른 스포츠계에서도 여성 진행 요원 고용을 재고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F1의 그리드걸이 '미투' 캠페인으로 없어지면, 복싱의 '라운드 걸'과 이종격투기의 '옥타곤 걸'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문화·예술계도 '미투' 태풍을 피하지 못했다. 영국 맨체스터 미술관은 지난달 말부터 19세기 영국 대표 화가 존 워터하우스의 그림 '힐라스와 님프들' 전시를 일시 중단했다. 여성 누드를 그린 명화(名畵)까지 '미투' 때문에 전시하지 못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1896년 완성된 이 그림은 상체를 드러낸 물속 여성 요정(님프) 7명이 남성 힐라스를 유혹하는 장면을 묘사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맨체스터 미술관의 큐레이터 클레어 가너웨이는 "미투 운동의 영향으로 이 작품이 여성의 몸을 수동적인 장식품처럼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며 "공공 장소에서 어떤 작품을 전시하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의문을 던져보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도 "속옷을 노출한 소녀를 그린 20세기 작품을 철거해달라"는 8000여명의 서명이 전달되기도 했다. 비슷한 문제의식은 오페라 업계로도 퍼져서, 지난달 이탈리아에선 '팜므파탈'인 여주인공 카르멘의 비극적 일생을 다룬 오페라 '카르멘'의 결말이 바뀌는 일도 발생했다. 자신에게 집착하던 남성에게 살해당하는 대신, 남성에게 저항하다 도리어 그를 죽이는 결말로 바뀐 것이다.

캐나다 상원은 지난달 31일 국가(國歌) 가사를 바꾸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국가 '오 캐나다(O Canada)'의 가사 중 '그대 아들들(all thy sons)의 명령대로'라는 부분을 '우리 모두(all of us)의 명령대로'로 변경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이 노래가 공식 국가로 채택된 1980년 이후 해당 가사를 바꾸려는 의회의 시도는 12차례나 있었다. 그러나 번번이 하원의 문턱을 넘지 못하다가 최근 통과했다. '미투' 영향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양성 평등을 향한 또 하나의 긍정적인 변화"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변화에 대해 "미투가 지나치게 과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오랜 직업까지 사라지게 만들고, 명화 감상까지 제한받을 정도는 심하다는 것이다.

맨체스터 미술관은 "예술을 검열하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에 시달리다 일주일 만에 '힐라스와 님프들'을 다시 전시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