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찾는 일은 중요하다. 별거 아닌 사소한 행동에 작은 의미 하나를 더해 하루에 몇 번 없는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반대로 의미에 파묻히는 인생도 위험하다. 지나가는 말 한마디가 귀에 맴돌아 즐거운 음악 소리를 놓칠 수도. 어느 때는 꽉 찬 하루보다 덧없는 하루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마감 따위가 무섭지 않다고 생각을 하면, 그게 종말인 겁니다.' 트위터를 열었더니 타임라인의 맨 위에 이 문장이 있었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우라사와 나오키.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왜냐? 내가 이번 애정 만세의 텍스트로 삼으려고 하는 만화를 그린 사람이 바로 이 우라사와 나오키고, 나는 오늘의 마감을 회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오늘 쓰려고 하는 소재는 나중에 쓸까?'라며 다른 소재를 찾는다는 핑계로 딴짓을 하고 있던 중 이렇게 우라사와 나오키님께서 몸소 내 타임라인에 강림해주신 것이다. 이건 분명 계시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회피하려 했던 그 작품의 이름은 '마스터 키튼'. 우라사와 나오키의 대표작 '20세기 소년'과 함께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본 만화의 마스터피스다. 나는 이 만화책을 갖고 있다. 나처럼 책이 많아서 매달 어떤 책을 처분할지 골머리를 썩는 사람에게 만화책을 무려 소장씩이나 한다는 것은 대단히 미친 짓이다. 길어야 세 권이면 끝나는 소설과 달리 만화책은 대개 열 권은 우습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화책은 만화방에서 보자'라는 게 내 원칙이지만, 원칙은 깨지라고 있는 것. 나는 가끔(?) 내 원칙을 깨트리고 마는데, 아무 때나 그러는 건 아니다.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마스터 키튼'의 경우에는 다이스케 때문이었다.

다이스케. '마스터 키튼'의 주인공인 히라가 키튼 다이치의 아버지인 히라가 다이헤이의 개다. 다시 정리해 말한다. 내가 '마스터 키튼'을 산 것은 개 때문이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팬들이 분노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순전히 그 개 때문이다'라고 쓰려다 말았다. 나는 과장법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차마 그렇게 쓸 수 없던 이유가 더 있다. 개만이 아니라 이 만화의 인물들도 아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전히 다이스케 때문만이라고 하기에는 이들에게 미안한 것이다. 옥스브리지(옥스퍼드+캠브리지) 출신의 고고학자이면서 영국 특수부대 SAS의 서바이벌 교관 출신이라는 화려한 전력의 로이드 보험회사 조사원이지만 '그래봤자 시간강사'라고 무시받는 어눌하고 무른 키튼(이름은 '다이치'지만 이 글에서 계속 '키튼'으로 부르겠다), '군사 동물생태 학자'라는 있어 보이는 직함을 가졌으나 여자를 지나치게 좋아한다고 비난받곤 하는 키튼의 아버지 다이헤이, 그리고 눈을 반짝거리며 이 두 영원히 철들 것 같지 않은 남자를 야단치고 훈계하는 남자들의 딸이자 손녀인 유리코, 그리고 열 손가락에 다 꼽을 수 없는 '마스터 키튼'의 매력적인 등장인물들 때문에.

다이스케는 1권의 7장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완전판 기준으로 171쪽에서. 다이스케가 등장하기 직전 다이헤이는 요코하마 시절 이야기를 한다. "그곳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있었지…. 날마다 남자를 끌어들이는 여자, 여러 여자한테 빌붙어 살면서 툭하면 여자를 때리는 남자, 고작 빵 한 조각을 위해 사람을 찔러 죽이는 소년…." 요코하마에서 다이헤이는 동물 생태학자답게 인간이라는 동물의 생태를 관찰했던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하드보일드 투의 말을 키튼이 듣고 있는데 들려오는 사운드 이펙트. "끼이-잉" 다이스케의 전격 등장이다!

그러면서 다이스케의 이력이 다이헤이로 하여금 개괄되는데, 이러하다 몇 달 전에 다이헤이가 길에서 주워 이 집으로 오게 되었으며, 차우차우와 세인트버나드의 잡종이고, 후각이 보통 개보다 두 배가 뛰어나다. 다이헤이의 주장에 따르면, 개의 후각은 인간의 백만 배라고 하니 다이스케는 인간보다 이백만 배 뛰어난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설명을 들으며 키튼은 다이스케의 몸에 난 상처에 대해 질문하는데…. 이마 한복판에 난 엑스 자 상처를 비롯해 다이스케의 몸에는 상처가 수두룩하다. 다이헤이는 이렇게 말한다. "못나고 마음이 여린 개는 괴롭힘을 당하기 마련이거든. 인간도 마찬가지야." 이때 이 개, 불쌍한 바보 다이스케가 내 마음으로 들어왔다. 만약에 다이스케가 내 앞에 있었다면 나는 분해하며 이렇게 말해주었을 거다. "바보냐? 당하고만 있게?" 다이스케는 이렇게 대꾸하고 말았겠지만. "헥, 헥, 헥"이라거나 "헝" "헝, 헝" "후아앙" '마스터 키튼' 전 권을 뒤져봐도 다이스케는 이 대사 이상의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라사와 나오키가 1권에 다이스케를 등장시키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만화책을 사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다이스케짱은 이렇게 당당한 위용으로 등장하셨고, 나는 이걸 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다이스케가 어떤 모습으로, 얼마나 많이 등장할지를 기대하며 한 권씩 '마스터 키튼'을 사 모았다. 그러다 이 만화의 주인공인 키튼이 일본에 돌아와야만, 그래서 아버지 집에 가는 에피소드가 펼쳐져야만 내가 다이스케와 상봉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 즈음에 연재되기 시작한 만화라는 걸, 이미 연재가 끝난 지 한참 된 만화라는 걸 알았지만 이렇게 빌었다. '어서 일본에 돌아가라고, 키튼. 아버지와 유리코가 보고 싶지도 않아?'

그래서 내게 '마스터 키튼'은 다이스케가 등장하는 권과 등장하지 않는 권으로 나뉜다.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대사 한마디 없이 자고 있거나 꼬리를 흔들고 있거나 기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컷 한두 개가 전부인 권도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다이스케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그 편은 내게 특별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편은 3권의 8장이다. 이 편에서 다이스케는 대활약하기보다는 공기처럼 스며들어 있다. 아버지와 딸이 없는 집, 오랜만에 일본으로 돌아온 키튼을 맞이하는 게 다이스케다. 도통 식구들과 얼굴을 마주할 시간이 생기지 않고, 그러던 어느 날 부자는 마주 앉아 메밀국수를 먹는다. 인생은 짧고 허무하다며, 수북해 보이는 이 메밀국수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고 말하는 다이헤이. 그리고 며칠 후 유리코까지 셋이 모인 자리. 이번에도 교수 채용에서 탈락한 키튼을 위로하는 다이헤이와 유리코. 아버지와 아들은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자신들에 대해 한탄하는데, 그때 들려오는 쓰르르르 쓰르르르 하는 풀벌레 소리. 일동 그쪽으로 시선을 둔다.

그때 다이헤이는 이렇게 말한다. "얘, 다이치. 이렇게 인생을 허비하는 것도…. 멋진 일 아니냐?" 나는 다이치, 그러니까 키튼을 대신해 대답했다. "멋지고 말고요." 웃으면서 졸고 있는 다이스케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