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주말뉴스부장

지난주가 테니스의 정현이었다면, 이번 주 주인공은 축구의 박항서(59)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는 선배 한 명이 그러더군요. 자신의 축구 인생에서 베트남을 이렇게 열심히 응원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요.

2002년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의 열렬한 키스를 빛나는 머리로 받아내던 그의 웃음을 기억합니다. 그 이전의 기억도 있죠. 유하 감독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 장면. 등교 중이던 상문고 학생들이 전날 벌어진 남북 축구를 두고 버스 안에서 갑론을박을 벌이죠. 피 말리는 승부차기 끝의 한국 승리. 한 명은 여섯 번째 키커인 이태호의 수훈이라고 하고, 또 한 명은 북한 나봉기의 마지막 킥을 막아낸 골키퍼 박영수의 공이라고 반박하며.

50대 이상이라면 그날의 경기를 '인생 축구'의 하나로 여기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1978년 10월 방글라데시에서 열린 청소년 축구 남북대결이었죠. 이날의 1번 키커가 박항서였습니다. 우리 팀 주장이기도 했고요. 남북 축구 사상 한국이 이긴 건 그때가 처음. 당시 축구를 함께 보던 형님들이 나봉기가 아오지탄광을 갔을 거라며 걱정하던 웃지 못할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베트남의 영웅이지만, 박 감독의 최근 10년은 사실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히딩크의 수석코치로 2002년 월드컵 4강에 기여한 후, 그는 그해 부산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이 됐죠. 모두가 우승을 기대했던 안방 대회에서, 박 감독의 한국은 동메달에 그쳤습니다. 이후 경남FC, 전남 드래곤즈 등 프로팀을 맡기도 했지만 마지막에 지휘봉을 잡은 팀은 실업팀 창원시청이었죠.

이번 대회 성적도 성적이지만, 더 박수 칠 대목은 박 감독의 도전정신과 패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좌절하고 은퇴할 순간에, 그는 해외로 눈을 돌렸죠.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게 아니라 스포츠 매니지먼트사를 찾아가 자청했다는군요.

국내의 빈약한 일자리 탓에, 청년들에게 해외 취업을 권유하는 시대입니다. 결국 중요한 건 도전정신과 패기라는 교훈을, 박 감독의 사례는 보여줍니다. 환갑을 코앞에 둔 나이지만, 그는 청년입니다.

베트남 U-23(23세 이하) 축구대표팀을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결승으로 이끈 박항서(오른쪽) 감독이 지난 24일 중국 장쑤성 쿤산에서 훈련 중인 선수에게 지시하는 모습.